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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가장 큰 인생의 기쁨의 하나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복의 쾌감, 그리고 새롭게 된 생활의 맛이 그것이다.

한데 H하이네는 인생은 병이요, 세계는 병원이다. 죽음이 우리들의 의사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천연두때문에 전쟁을 이기고, 천연두때문에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있다. 1519년 신대륙을 침공해 아스텍제국을 정복한 스페인군의 숫자는 불과 600명이다.

하지만 정복자 코르테스의 용맹과 수완이 그만큼 탁월했던 것도 아니다. 또 당시 신대륙에는 없던 총포와 말들로 무장한 압도적 군사력에 힘입은 것도 아니다. 수수께끼와 같은 정복 전쟁의 ‘보이지 않는 손’은 다름아닌 마마, 즉 천연두의 유행이었다. 면역력을 지닌 스페인 병사들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반면, 원주민들은 신대륙에 처음 상륙한 괴질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러니 원주민들의 눈엔 스페인 병사들이야말로 ‘신의 자손’으로 보였고, 그들은 전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천연두가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로 퍼짐에 따라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든 잉카제국은 뒤이어 원정에 나선 피사로의 군대에 굴복하고 말았다.

의료전문가들에 따르면 예방접종률이 95%를 넘으면 해당 전염병이 유행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예방접종을 못해 면역력이 없는 나라는 비극이 따를 수밖에 없다. 비극을 막는 길은 예방약 개발이다. 유럽 귀족의 비극도 이에 해당하는데, 16세기 유럽에 창궐했던 매독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당시 많은 사람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의 배에 매독균이 함께 밀항해 들어왔다고 믿었다.참혹한 증상을 동반한 매독이 ‘신대륙의 복수’라고 불린 연유다.

그런데 근래의 생화학적 연구는 이런 가설을 부인한다. 원래부터 유럽에 있던 이 무서운 균이 우연히도 신대륙 발견 직후 발호했다는 것이다. 매독은 주로 성관계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유럽귀족과 왕실에서 유행했고 몇몇 나라에선 왕조가 바뀌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배계층에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회계층간 이동이 활발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전염병 피해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였다. 몽골군의 침략에 의해 유입된 이 공포의 연쇄살인범은 유럽 인구를 절반으로 줄어들게 했다. 흔히 얕잡아 보는 독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다. ‘감기 사망자가 2000명이다. 온 가족이 앓아 누워 죽은 사람을 묻을 사람이 없는 형편이었다.

경찰서와 군청에서 감기에 대한 강의를 하려 했으나 사람들이 모두 앓아누워 들을 사람이 없었다. 예산, 홍성서도 지금껏 추수를 못해 품삯이 이원오십전까지 올랐다.’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까지 휩쓸던 1918년 12월 총독부가 기관지 매일신보에 ‘충남 서산 한 개 군에만 8만 명의 환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다.

▲스페인 독감은 미국과 유럽처럼 그해 9월부터 크게 번졌다. ‘악성의 유행병, 몸시 아픈 감기’라는 매일신보기사는 ‘9월23일부터 평북 강계군에 유행성 감기로 3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특징은 머리와 밑관절 등이 몹시 아프다더라’라고 했다.

경성은 9월에 환자가 나왔고 11월엔 평양 인구 절반이 감기로 고생한다는 기사도 있다. 경성에선 개도 돌림감기로 전염돼 죽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1918년 조선총독부 통계연금은 ‘조선 총인구 1,670만명 중 44%인 742만 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이 죽었다’고 집계했다. 치사율이 1.88%나 됐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번지는 지금 의료수준과 위생조건은 그때와는 천지차이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에서 독감이 급속하게 번져 사망자가 나오면서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병원마다 감기환자가 몰려 곧 주의보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퍼지는 바이러스는 H2N2이고, 국내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H1N1으로 유행이 다르다. 손 자주 씻기 등 간단한 위생수칙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노약자나 병약환자 어린이는 조심해야 한다.

고운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