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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란 것이 있다. 꽃도 그 생명이 생생할 때 향기가 신선하듯이 사람도 그 마음이 맑지 못하면 품격을 보전하기 어렵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고로 인격은 부산물이다.

인격은 매일의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나가는데서 만들어진다. 한데 우리 역사상 현대처럼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 귀했던 것 같다. 눈 내리는 겨울날 뜻이 맞는 선비끼리 한가하게 사랑에 모이면 누군가가 ‘꼴불견’에 대해 일곱 글자의 글을 짓자고 제의를 한다.

그러면 번갈아 글을 지어내는데, ‘꽃을 보고 눈물 흘리는 꼴불견’ ‘이끼 위에 돗자리 펴는 꼴불견’ ‘꽃가지에 속옷 말리는 꼴불견’ ‘달 아래 불 잡고 있는 꼴불견’ ‘기생 옆에서 국사 논하는 꼴불견’… 하며 무릎을 치고 즐긴다.

일제때에도 이 인격자를 찾기 힘들어 선비들의 지식유희가 꽤나 성행했던 것 같다.

최남선(崔南善), 정인보(鄭寅普) 같은 우리 역사에 조예가 깊은 분끼리 북한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조선왕조 5백년 동안 각계각층의 대표적 인물을 각자 투표하여 다수결로 정하는 유희를 하고있다.

이를테면 ‘절(節)’은 성삼문(成三問), ‘풍류(風流)’는 임백호(林白湖), ‘오입장이’는 천흥철(千興喆), ‘방달(放達)’은 정수동(鄭壽銅), ‘주(酒)’는 우육불(禹六不), ‘미인(美人)’은 자동선(紫洞仙), ‘부(富)’는 변승업(卞承業), ‘도(盜)’는 일지매(一枝梅) 하는 식으로-. 사실 알고보면 그때그때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 내각(內閣)을 구성하는 조각유희(組閣遊戱)는 전통있는 지식유희다.

그래서 덕망이 있던 임금은 승지들에게 밀지(密旨)를 내려 북촌(北村)의 아무개 집 사랑에서, 또는 남촌(南村) 아무개 집 사랑에서 ‘조각유희’한 것을 염탐해 갖고오라시켜 사람을 쓸때 참고할 정도였다하니 유희치고는 퍽 파워가 있는 유희였다 할 수 있다.

재미삼아 육당 최남선이 남긴 조각유희를 보면 수상에는 농부로서 천거되어 국상(國相) 13년 만에 태평성세를 이룩한 을파소(乙巴素)-육군대신에는 을지문덕, 해군대신에는 이순신, 학부대신에는 설총(薛聰) 등으로 조각을 하고있다.

참모총장에는 강감찬, 군단장에는 김유신을, 함대사령관에 신라의 장보고, 검찰총장에는 조광조, 국립대학 총장에는 이황, 정몽주는 전권대사로 기용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요즈음 국회랄 하원의원을 선거로 뽑는 일이다.

뽑아놓은 것을 보면 안배가 너무나 잘돼 있다. 하원의장은 이이요, 백제의 대표는 성충, 고려의 대표는 이색, 조선의 대표는 황희…하는 식으로 각국 대표가 하나씩 선발되고, 노론 대표에 송시열, 남인 대표에 허목… 하는 식으로 사색당 대표가 고루 선출된 데다가 천민 대표에 서기, 중인 대표에 홍순언… 하는 식으로 각 사회계층 대표, 그리고 송익필 같은 서족 대표, 엄홍도 같은 아전 대표까지 국회에 진출시키는데 소홀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빠짐없이 민의를 수렴한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 못한 요즈음 국회가 배울 것이 적지않은 그런 지식유희가 아닐 수 없다.

한데 최근 새로 탄생한 박근혜 정부의 조각은 캄캄이 조각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대탕평을 하겠다고 해 믿었던 호남인들의 믿음 역시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호남을 찾을 때마다 “호남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한말과 “대통령이 된다면 제일 먼저 대탕평인사부터 펼칠 것”이라며 “호남의 인재, 여러분 아들딸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거부감으로 바꿔 놓아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짜 호남 장관 한 명 없어 퇴행적 ‘호남 소외론’이 회자된다는게 이젠 지겨울 따름이다.

강조하건데 국민대통합의 단초는 호남인재의 중용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실패’로 귀결되는 것은 철저한 호남 홀대에서 비롯된 특정 지역 편향이 그 요인이다.

호남이 없는 대탕평과 대통합은 있을 수 없다. 망하려고 들면 무슨 일인들 못하리오만, 앞에서 말한 지식유희와 조각유희는 이 시대 정부나 국회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운석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