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사공은 철학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저명한 철학자가 강을 건너며 땀 흘려 노를 젓고 있는 사공에게 물었다. 다소 오만이 섞인 물음이었으나 사공은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허, 당신은 인생의 3분의 1은 헛살았군요.” 어쩌면 철학자는 사공의 그런 대답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학문에 대한 위엄을 내세우며 한 번 더 사공에게 묻는다.

“그럼, 문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제가 어찌 문학을 알겠습니까?”

“쯧쯧, 당신의 인생 중 3분의 2는 낭비된 삶이었구려.” 철학자의 의기양양해 하는 질문 앞에 사공의 대답은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사공이 어려서부터 줄곧 배워 온 것은 배에 관한 것, 노 젓는 법, 강물의 흐름 등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교육이었음을 철학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된 철학자의 질문은 사공이 받았던 현실적인 교육의 가치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철학자의 질문은 철학과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자신이 배웠던 교육의 우월성을 뽐내는 것이다. 철학자의 눈에 비친 사공의 현실 교육은 강물 위에 솟아있는 작은 바위처럼 볼품없고 가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사공의 무지함과 교육 받은 내용의 가치에 대한 폄하로 철학자의 자아도취가 더욱 심해질 무렵 배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주 작은 바위에 부딪혀서 침몰하고 만다. 철학과 문학의 배움에 전력 투구하여 수영을 배울 시간이 없었는지 아니면 수영에 대한 가치를 인정할 수 없어 일부러 배우지 않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불행하게도 철학자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철학자를 향해 사공이 묻는다.

“위대하신 철학자님, 수영을 하실 줄 압니까?” 철학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철학자는 이미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으며 사공은 그 철학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인생의 전부를 잘 못 살았군요.”

이 이야기에서 철학이나 문학이 가벼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현실 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예도 결코 아니다.

철학과 문학은 인간의 정신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에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사람들도 모두 이것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교육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까?

물론 현실 교육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교육 내용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사공이 자신이 배워야 할 노 젓는 법과 강의 특성 등에 관한 내용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철학과 문학에만 매달렸다면, 이미 사공은 굶어 죽었거나 행려자가 되어 그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한 것이라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교육, 즉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은 어쩌면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을 천시했던 과거에 민족이 겪은 고초가 얼마나 컸는지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사공이 받았던 현실 문제 해결 위주의 교육이 꼭 개인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철학과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윤택하게 한다. 현실 문제 해결 위주의 교육이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철학과 문학은 정신적인 행복 추구를 위한 수단이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비록 그의 몸이 불편하고 배고플지언정 정신만은 항상 맑고 밝고 건강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철학자와 사공의 만남을 새롭게 구상해 보자. 사공은 부모님으로부터 배에 관한 지식, 노 젓는 기술, 강의 변화와 특성 등을 배우고 또 시간을 내어 틈틈이 철학과 문학 공부를 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철학자 또한 철학과 문학에 도취되어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일정 시간은 수영, 농사짓는 법, 자연 현상의 변화와 특성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자.

철학자가 철학과 문학을 알고 있는 사공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사공은 힘든 노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철학자는 그가 배운 철학과 문학에 대한 행복감과 무료함을 달래며 강을 건넜을 것이다.

교육은 조화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내용과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교육 내용이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의 힘은 배가되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자체가 절름발이 교육이므로 우리는 현실 교육과 정신 교육의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정재 <광주교육대학교 前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