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나라 중국 301회
◆중국에는 용이 살고 있다.<맹자의 고향 추성(鄒城)>
입력시간 : 2014. 04.24. 00:00확대축소


맹자의 고향은 추성시는 공자의 고향인 곡부시보다 훨씬 크다. 맹자의 사당인 맹묘(孟廟), 맹부(孟府)가 함께 있으며, 곡부에서 가는 길에 맹모림(孟母林)이 있다. 공자의 사당보다 훨씬 작으며, 관람객도 공자 사당보다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맹자의 본명은 가(軻), 시호는 추공(鄒公)이다. 공자의 정통유학을 계승 발전시켰고 공자 다음의 아성(亞聖)으로 불린다. 그가 내세운 기본원칙의 핵심은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맹자는 그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서 인간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태어날 때 선(善)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惡)한 존재인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직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제기되는 전제 사항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악한 사람보다는 선한 사람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진실이다. 그러나 가끔씩 충격적인 사건으로 해서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들춰보면 인간은 악한 존재일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맹자의 가문은 귀족가문으로 추성에 정착해 살았다. 맹자는 추나라에서 BC 371년경에 태어났는데, 그의 일생은 여러 면에서 공자의 일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추(鄒)와 노(魯)는 인접한 국가였고,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한국교육의 대표적인 정신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의 어머니는 묘지․시장․학교 부근으로 3번이나 이사해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고사성어가 나오기도 하였다. 마침내 맹자가 학교 근처의 면학적 분위기에 적응해 공부를 열심히 하게끔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이외에도 학업에는 인내와 열성이 중요하다는 잊지 못할 교훈을 주기 위해, 베틀 위의 베를 찢어버린 맹모단기(孟母斷機)의 일화로 유명하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맹자의 어머니는 수천 년 동안 전형적인 어머니 상으로 숭배되어왔다.

젊은 학자 시절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으로 수업했다. 이렇게 해 공자 사상의 정통성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마침내 맹자도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고 잠시 제나라의 관리로도 일했다.

그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정(仁政)을 베풀라고 조언했다. 그 당시는 혼란기였기 때문에 제후들은 인정보다는 패도(覇道)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인정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역설한 맹자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著者 姜元求 박사의 프로필 現 행정학박사/ 現호남관광교류협회장/現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現광주여행문화원 회장/現 중국 심양. 남창 명예시민/ 前 전국시도관광협회연합회장/前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前 광주권발전연구소장/ 前광주상아탑학원 원장 前호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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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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