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K군이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교무실에 왔다. K군은 낮은 목소리로 담임선생님께 말했다. ‘나의 성적을 엄마에게 알리지 마세요.’ 마치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왜 K군은 엄마에게 성적을 알리지 말라고 했을까?

얼마 전 중간고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담임선생님이 K군을 불러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추궁했다. K군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지난 번 성적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연 K군은 성적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행위가 당연한 것일까.

보통 선생님(기성세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게을러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결과는 좋게 나올 수밖에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너희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진짜로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몹시 부끄러워한다.

100명 중에서 상위 몇 명만, 아니 1등만 인정하고 99명을 힘들게 하는 구조는 탓하지 않고 아이들의 머리를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타탕한 것일까? 1등부터 꼴찌까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그 누구에게 몇 등을 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린 다 1등 아니면 100등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인데 1등 아닌 나머지 아이들을 무능하다는 꼬리표를 아무 거리낌 없이 달아준다.

논리가 맞지 않다. 1등이 있으면 반드시 꼴찌가 있다. 금메달이 있는가 하면 동메달이 있다. 있지도 않은 황금빛 숫자 1등과 금메달을 만들어 놓고 2등과 은메달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그 구조는 무엇이란 말인가. 99명과 메달조차 획득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황금빛 숫자 1등을 향하여 달리는 교육제도에서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바보아이를 양산하는 교육제도 속에서 대다수의 아이들을 바보라고 외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1등만 하는 S양에게 물어보았다. “넌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 / 모두가 다 열심히 하잖아요. / 친구들이 쉬지 않고 공부한다고, 너도 공부만 할 거니? / SKY 대학에 가야 하잖아요. / 그 대학에 입학해서 뭐하게. / 판사나 의사 아니면 대기업에 입사해서 돈을 벌어야지요. 엄마가 성공해야한데요. / 성공이 무어라고 생각하니? /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에서 재미있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한 남들보다 더 앞서가는 것이 아닐까요.”

S양이 공부하는 이유는 너무 세속적이다. 그렇다고 S양을 탓할 수도 없다. 공부를 못하면 성적표를 숨기고 나의 참모습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말이다. 어차피 99명은 공부를 못하는 천덕꾸러기라고 평가하는 제도 아래에서, 그들의 삶을 부끄럽게 하고 무능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이 구조는 이젠 정말 지양해야한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지식을 수치화해서 보여주고 ‘너는 머리가 좋고 너는 머리가 나쁘다’라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야기, 댄스, 운동, 악기, 그림, 인사 등 잘하는 특기는 오롯이 빼어버리고 오직 지식 익힘만으로 줄을 세우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의 획일화된 이 구조 때문에 99명, 아니 대한민국 많은 학생들이 현실을 힘들어하고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교육제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분의 혜안을 듣고 싶다.

쉽지 않은 대안 찾기다. 결국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정치, 경제, 자본 등의 구조를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한다. 또한 이런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위정자나 자본가 그리고 언론인들이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와야 한다. 지금처럼 그들이 당당하고 떳떳하며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우리의 아픔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젠 99명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국민(학생)이 당당하고 떳떳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오만함과 당당함이 비루함과 수치심으로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일까.

/여양고 교사 김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