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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때문만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는 가운데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정확히는 재의요구권)행사로 나라전체가 시끄럽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국민을 평안하게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오히려 정치 때문에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일각에서 정치무용론(政治無用論)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과문의 소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국회법 개정이 이토록 정치전반을 혼란으로 몰고 갈만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삼권분립(三權分立)을 권력체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행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부여되어 있고 헌법은 이들 간의 견제와 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부가 발하는 행정입법(대통령령 등)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무효라는 것이 입법체계의 대원칙이다.

문제는 최근들어 행정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행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왕왕 행정입법이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이번의 경우처럼 국회가 스스로의 입법을 통해 행정부에 그 시정을 요구하는 권한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둘째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 국회가 헌법상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헌법재판소에 해당 행정입법을 제소하여 그 효력정지 판결을 받아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국회가 스스로 국회법을 개정하여 행정입법에 대한 제재권한을 확보하려 하였고, 이에 대해 행정부가 삼권분립을 내세워 반발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회가 후자의 선택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한편 입법부와 행정부와의 대립이 정부(청와대 포함)와 여당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급기야 여당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었는데 좀더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元首)이자 행정부의 수장으로 헌법기관인 것처럼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도 국민의 대표로서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위와 권한도 존중되어져야 하지만 국회의원의 권위와 역할도 존중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원내 대표를 포함하여 여당의원 대부분이 당선 과정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국회의원 특히, 160여 국회의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 원내대표의 권위와 정치적 역할은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그 자체는 누구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국회의 태도와 방식에 있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은 분명히 재의(再議)를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국회는 재의를 하여 가부를 정하여야 함에도 여당은 투표불참을 통해 재의를 무산시킨 채 그 모든 책임을 원내대표에게 지웠다. 만약 재의를 위한 투표가 실시되었다면 대통령의 의중을 무시할 수 없는 여당의원들로서 다시 찬성표를 던진 것이 결코 쉽지 않을 일이라고 할 때, 국회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이며, 여당의 원내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에 규정된 권력운용시스템이며 동시에 정치문제를 풀어나가는 정도(正道)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당 간에 적지 않는 대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여당 내부에서도 계파 간에 다양한 형태의 소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지만, 대통령이 여당의 지도부를 불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면 원내 대표가 끝까지 마이웨이를 고집할 수 있었을까?

정치란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들리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오수열<조선대 교수·한국동북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