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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저산 높다해도 보리고개 넘기가 그중 힘들더라”라는 말이 있다. 기근이나 전쟁, 보리고개를 넘을 때 산나물은 우리 조상들의 귀중한 구황식이기도 했다. 산채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나물로는 고사리를 꼽을 수 있다. 도르르 말린 고사리 새순은 나물이나 국거리로 많이 먹고, 가을에 캔 고사리는 햇볕에 말려 주로 약으로 썼다.

옛 책에는 고사리를 읊은 글이 많이 있다. 그 중에 2편만 읽어보자. “뒷 뫼에 고사리 하마 아니 자랐으랴/ 오늘은 일 꺾어 오너라 새술 안주 하리라” “아헤야 구럭망태 어두 서산에 날 늦거다 밤 지난 고사리 하마 아니 늙으리야/ 이몸이 이 푸새 아니면 조석 어이 지내리” 그런가 하면 ‘절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고사리국을 제공하는 것이 전례였다.’ 등 중국의 글을 보면 고사리는 우리 민족과 중국에서만 식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본초강목]에는 “고사리는 유독하며, 오래 먹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코가 막히며 머리가 빠진다. 많이 먹으면 발이 약해져 잘 걷지 못하게 된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고사리는 남자의 양기를 없애는 소양제(消陽劑)로 알려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시앗 시샘에 고사리죽’ 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앗을 본 남편이 미워 남편의 양기를 죽이려고 허구한 날 고사리죽을 쑤어 먹인다는 속담이다. 그러나 양기를 감퇴시킨다는 증거는 아직 없고 단백질, 비타민 B2, 섬유소가 풍부하며, 말린 고사리에는 비타민 D가 풍부하다.

고사리의 여린 잎과 뿌리는 ‘궐채’라고도 불리는데 피를 맑게 하고 머리를 깨끗하게 하고 뿌리의 가루는 흥분제이며 해열작용과 이뇨작용, 불면증을 다스리는데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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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고사리를 독이 있는 식물로 분류한다. 300년 전에 영국의 식물학자 글레퍼는 “고사리는 줄기를 삶아 먹으면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으나 임산부가 고사리 순을 먹으면 태아가 죽는다”고 하였다.

고사리는 오래전부터 몸에 해로운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 이유는 소나 말이 성숙한 고사리 잎을 계속 뜯어 먹으면 다리의 힘이 빠져 주저 않아 버리고 결국은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그 원인은 1965년에야 영국의 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고사리에는 미량이지만 발암성인 브라켄톡신이라는 물질과 아네우리나제라는 비타민 B1을 파괴하는 효소가 있다. 소나 말이 고사리 잎을 자주 뜯어먹다 보니 비타민 B1의 심한 결핍으로 영양균형이 깨져 생명을 위협한 것이다.

고사리는 곤충의 침해를 방어하기 위하여 중독을 일으키는 청산(靑酸)을 만들어 낸다. 어린 순은 그 성분이 순하지만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받아 자라난 잎들은 강력한 독이 되어 동물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고사리를 삶을 때 재를 넣고 삶아 여러 번 우려낸 후에 조리하거나 건조시켜 이용하는 해독조리법을 알고 있었다. 생으로 한꺼번에 많이 먹는 소와는 다르고 나물로 먹는 양 정도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가 방광암, 직장암을 일으킬 정도의 양은 사람의 경우 매일 320g 이상의 양을 3개월 이상 먹어야 하는 양이다.

가끔 먹는 고사리나물이나 찌개에 들어가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고, 석회질이 많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치아와 뼈가 튼튼해진다. 비타민 B1가 풍부한 잡곡, 돼지고기, 땅콩 등과 같이 먹으면 좋다.

초봄의 산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고사리순은 쓰임새가 많은 나물거리이다. 고사리전, 녹두빈대떡, 비빔밥의 주요 재료 외에도 들깨즙을 넣은 고사리탕, 육계장의 뺄 수 없는 재료로 쓰인다. 예전에는 고사리 새순에 봄에 제 맛이 오른 조기를 넣고 자박자박 졸이면 봄 반찬으로 최고였다. 비닐하우스 재배로 식탁에 계절을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철따라 나는 산물을 귀하게 먹는 즐거움만은 누리고 싶다.

김정숙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김치발효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