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정치의 목적은 선을 행하기 쉽고 악을 행하기 어려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그리고 정당은 이제까지 살았던 가장 훌륭한 인간보다 더 낫게 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옛날의 이른바 양묵노불(楊墨老佛·양주 묵적 노자 불타를 일컬음)도 아니면서 의론의 바팔이 넷이나 되고 옛적의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도 아니면서 명분의 주장이 서로 충돌돼 진·월(秦·越)의 사이보다도 더하고 명분이 너무 그어져 화·이(華夷)의 구별보다도 엄격하다.

형적이 혐의적이면 서로 들으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신분위세에 구애되면 서로 상대하면서도 감히 벗하지 못한다.” 연암 박지원이 홍대용의 문집에 서문으로 써준 이 글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네 파벌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벌이면 당시 지식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서로 종교나 신앙이 다른 것도 아니고, 계급이 다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난리냐는 것이다.

인조 때의 문신 정온도 “우리나라 붕당(朋黨)의 폐해가 당송(唐宋)의 말기보다도 심해 사분오열돼 서로 밀쳐내고 끌어들여 자기에게 붙는 자는 불초하더라도 훌륭하다고 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는 훌륭하더라도 불초하다고 해 오직 사당(私黨)을 심는 일에만 힘쓰고 국사는 제쳐두고 생각지 않았으니 이것이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돼 수습할 수 없게된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대체로 조선시대의 당쟁을 부정적으로 보고 그것을 보더라도 우리들은 단합보다 분열과 대립을 잘하는 민족이란 인식을 일부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시데하라 아키라 등 일제 때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던 것인데 그것이 알게 모르게 주입된 때문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조선 당대에도 이런 현상을 개탄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다만 이것이 우리 민족성의 문제라고는 인식하지 않았는데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그런 생각이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민족성이라는 것은 그 형성의 요소를 해명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들을 시비하거나 가치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즉 민족성은 그가 형성한 문화나 문물에 대해 비난과 칭찬을 받을 수는 있지만 비난과 칭호를 받을 민족과 민족성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훈 ‘한국문화사 서설’)라는 반론이 있었다.

최근 우리 정치현실을 보면서 또 그런 생각을 하는 분도 많은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한동안 야권이 분열해 탈당이니 뭉쳐 모이니 하며 노선을 달리하고 논란을 펴더니 이어 여권에서도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면서 쟁론을 벌였다.

한정된 후보자리를 놓고 누가 공천되느냐의 싸움이었지만 장외에서 보는 유권자나 국민은 달갑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무엇을 잘했느냐가 평가 기준이 아니라 서로 자기파를 더 만들기 위한 자기만 살기 위한 싸움으로 느껴지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원론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가 국민성 자체를 좋고 나쁘다거나 헐뜯을 수 없는 것처럼 서로 파벌이 나뉘고 의론이 다른 것을 무조건 당쟁에 비유하거나 분열주의로 자책하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비난하는조선시대의 당쟁-당시에는 이를 당의, 곧 서로 다른 편끼리 의론하는 것이라고 했다. 온 조선의 지배층이라는 특수한 계층에서 일어난 것으로 민중 전체의 습성이 아니며, 당쟁 기간을 보면 조선조 500년 가운데 180년이고, 가장 격심했던 시기라 할 1680년(숙종 6년)남인이 정권에서 축출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사건으로부터 1727년(영조3년) 노론을 내치고 소론을 불러올 때까지 50년 정도 사이에 정치적 이유로 희생된 사람은 79명으로 1년에 1.6명 정도라는 분석도 있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다녀간 프랑스인은 당시 조선에 네 개의 정당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 패망의 원인이 당쟁이라고도 했다.

당쟁은 자리와 감투 싸움이요, 정권 다툼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립하는 두 세력이 싸울 때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이 점도 있다.

한데 송시열의 출현 이후 노론이 정권을 확실하게 잡자 자파일색으로 요직을 독점해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됐고, 그에 견디다 못한 민란 등으로 조선이 패망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한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니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많다. 정치가 꼬이면 사색 당쟁의 재연이다.

고운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