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순은 왜 鎭魂祭가 필요한가 ?!
많은 冤魂(원혼)이 화순 구천을 못가 떠돌아 반드시 필요 !
화순의 惡材를 무속적으로 무마시키는 유일한 방법 !
입력시간 : 2018. 07.12. 00:00


제1회 천록암 주관 도당제 및 위령제
화순군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화순은 면적의 74% 정도의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가운데, 우선 만연산이 불산(火山)산이라고 하여, 화순읍과 군청을 내려다 보고 있어서 물로 불을 꺼야 하는데 화순읍의 10井(10개의 우물)이 거의 말라있다.

이런 상태에서 화순의 불을 끄는 구실을 못하게, 남산 방죽을 1984년 10월 24일 매립하여 읍사무소 3층 청사를 건축하여 방죽이 사라지면서 (불)火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전설 같은 실화로 그 동안 민선 군수 4명이 구속되는 불운을 맞고 있을 뿐아니라, 그동안 지방선거 때마다 고소, 고발로 사실상 화순이 편하지 못하고 和順이 禍巡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언론인이 언론인을 고소해서 피가 터지게 싸움을 하는 문제도 결국 정치적인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의심의 몫이 되고 있다.

이는 화순에 구천을 가지 못하는 冤魂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무속인들의 의견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서 '너릿재 굿' 보존회를 통하여 화순에 구천을 떠 돌고 있는 원혼을 달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많은 군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너릿재와 화순의 冤魂(원혼)에 대해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너릿재는 무등산에서 장불재로 이어져 남쪽 수래 바위산과 소룡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국도 29호선이 통과하고 있는 길이다.

너릿재는 1971년 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오면 한 달 넘게 길이 끊기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낮에도 산적이 나오는 험한 고개였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또한 갑오 농민 전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었고, 6·25 전쟁 때는 빨치산과 국군들이 대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너릿재 터널 이전 화순 땅에는 1951년 4월 너릿재에서 싸우다 순국한 무명 용사들의 묘지와 1950년 10월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당시 화순 경찰서 소속 경찰관 23위를 모신 순국 경찰 묘지가 있으며 충혼 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깊고 험한 옛 너릿재를 넘던 사람들이 산적이나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해 널에 실려 너릿 너릿 내려왔다는 한많은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전남 화순군 남면 벽송리에 일어난 동학난 전투[碧松-戰鬪]로서1894년 12월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벽송리 일대에 은신 중이던 동학 농민군이 지역 민보군과 벌인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온 곳 이다.

이 전투에서 220명이 체포되었고 그 가운데 157명은 현장에서 일본인에게 총살당했으며, 63명은 생포되었다.

또한 6.25 한국 전투와 이전 여순반란 사건으로 화학산에 은신했던 빨치산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 화순군이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진혼제를 지냄으로서 화순의 정치적인 불화를 평정시킬 필요가 있는 곳이 화순이다.

화순은 현재 각종 단체에서 위령제와 추모식을 하고 있지만 토속민속신앙 차원에서 포괄적인 진원제를 올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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