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유난히도 무더운 가운데 태풍 피해 또한 어느 해보다도 컷던 여름도 서서히 그 위세가 수그러들고 새벽녘에는 벌써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여름 내내 북한 미사일과 전시작전권 환수문제가 국가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요즈음에는 뜸금없는 '바다이야기'로 나라가 뒤숭숭하다. 이처럼 나라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정작 우리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조선대 문제'는 지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채, 향후 그 방향을 둘러싸고 현 체제와 구 경영진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 1988년 110여일에 걸친 학생들의 장기투쟁으로 박철웅 총장을 중심으로 한 구 경영진이 물러나고 민주화된 조선대학교는 그 후 몇 차례의 '임시이사'체제가 바뀌면서도 큰 틀에서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커다란 발전을 지속하여 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건설공사에서의 비리 의혹과 수차례 치루어진 총장선거 과정에서의 금품 및 향응 수수, 그리고 최근에는 교수평의회 의장 선거에서마저 위스키와 꼬냑이 살포되는 등 민주화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산 집행 및 교수공채 과정의 투명성,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은 거의 공원화된 캠퍼스 등은 구 경영진 하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로 과거의 어두웠던 인식을 떨쳐내고 지역민들의 사랑받는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조선대학교의 자랑스런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연구력 또한 상당히 향상되고 있어서 명실공히 전남대학교와 함께 지역의 미래를 책임지는 거점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는 임시이사 파견이 장기화 되었고, 대학이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법인 조선대학교'에 대해 조속한 시일내에 '정이사(正理事)'체제를 출범시킬 것을 독려하는 공문을 보냄으로써 조선대학교는 또다시 체제 결정의 분수령에 처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기회있을 때마다 대학 복귀를 도모해온 구 경영진에서는 '박철웅 전총장의 유처 겸 이사장 정애리시(鄭愛利施)'씨의 명의로 "정이사 선임시 적어도 3분의 2 이상을 자신들이 선임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고, 법인 탈환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구 경영진 퇴진시 '어용교수'로 몰려 대학을 떠난 교수들 또한 복직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조선대학교가 어느 일개인의 재산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해방 직후의 그 어려웠던 시기에 7만2천여명의 '설립기금'에 의해 세워진 지역민의 대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률적으로는 '사립대학(私立大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민립대학(民立大學)'인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비록 일개인의 재산으로 설립된 학교의 경우에도 그 공익성(公益性)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속에서 '조선대학설립동지회'의 대표 자격을 가졌던 고(故) 박철웅 총장이 유명을 달리한 마당에 그 가족의 연고권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진정으로 그들이 조선대학교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구 경영진체제에서 정체되었던 조선대학교가 뒤늦게나마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는 데 대해 축하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경영권문제로 또다시 분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할 때만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학내 구성원의 총의(總意)에 의해 설립동지회의 대표로서 대학 설립을 주도했던 박철웅 전 총장의 흔적을 캠퍼스 내에 남기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조선대학교는 우리 지역사회의 교육을 상당부분 책임지는 이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해방직후의 어려웠던 시기에 지역을 이끌고 나갈 인재 양성을 위해 '십시일반' 설립기금을 낸 지역민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조선대학교야말로 조선조 이래 불의에 저항해온 '호남정신'의 또 다른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대학교의 문제는 비단 '이해 관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지역사회 모두의 관심사항이 되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지역에 훌륭한 교육기관 하나를 발전시키는 길이 될 것인가에 대해 지역과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오수열<조대교수. 한국동북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