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언어라는 것이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킬 때 사용하는 것이라면, ‘공무원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공무원은 과연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청자(聽者)이자 고객인 국민과 제대로 대화한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행정기관 각처에서는 ‘공무원어’, 즉 생소한 행정용어를 모든 국민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혁신을 사소한 일상에서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노력이다.

행정기관을 찾는 민원인과 언어 소통이 막히면 정보 흐름도 장애를 일으킨다. 행정용어를 쉬운 말로 고치는 일은 투명한 행정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다.

▶국민과 담쌓는 '공무원어'

얼마 전 행자부가 실시한 행정용어와 명칭사용 현황에 대한 4개 기관 표본조사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선정된 것을 보면, 대표적인 민원처리기관인 고충위가 공문서나 민원서식, 법령, 간행물 등에 얼마나 민원인을 배려한 쉬운 행정용어를 사용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 같다.

물론 국민고충 위는 가능한 한 순화된 행정용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민원 처리 결과에 첨부되는 의결서 에는 어쩔 수 없이 법률용어를 자주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법률용어들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위원회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렵기로 유명한 법률용어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니 내심 정말 반갑다.

법무부는 최근 기본법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민법 229조에서 나오는 제언(堤堰)이나 구거(溝渠) 같은 말을 '둑과 도랑'으로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또 산림청은 2005년 8월부터 사무실 내 모든 컴퓨터에 ‘바른한글’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유난히 생소한 한자어가 많은 산림행정 용어를 순화하자는 취지이다. 덕분에 산림청 문서에서 '수근(실뿌리), 갑충(딱정벌래), 삽목(꺽꽂이), 산간오지(두매산골) 등의 어려운 말들이 사라지고 친근한 우리말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행정용어 순화는 거창한 프로그램 구축 없이도 가능하다. 혁신이 거창하고 대단한 무엇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 '바른 한글'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산림청

내부 직원 간 원활한 정보공유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서울 중랑구는 ‘알기 쉬운 행정용어 사용 실례’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행정용어 순화에 대한 지식을 직원들끼리 나누고 있다.

이 책은 ‘의법조치하고’는 ‘법에 따라 처리하고’로, ‘도과(徒過)하다’는 ‘지나다’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한다. 책 발간 후 1년 사이에 어려운 용어의 80% 정도가 행정문서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정부 내 국어 순화 작업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면 행정용어 순화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업무도 바쁜 마당에 굳이 어려운 행정용어까지 배워 쓸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키보드를 누르는 공무원 각자의 손끝에서 행정용어 순화를 통한 혁신이 시작된다. 손끝으로 시작하는 혁신,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