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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충무로 초년병 시절인 1976년 영화 ‘로보트태권V’를 제작했던 유현목 감독이 운영하던 유프로덕션에서 ‘로보트태권V’라는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당시 18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로써 경이적인 사건에 속할 정도로 엄청난 충무로 사건인 효자상품이었다. 당시 3만 명이면 ‘히트’했다고 하여 감독의 체면치레가 되었던 수치이고 8만∼1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 요즘 용어로 대박인 셈이었다.

더불어 이 영화를 만들었던 김청기 감독과 지상학 시나리오 작가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하루아침에 충무로 저명인사가 되었고 영화계 황제인 영화제작가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을 만한 위치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이 영화의 대본 집필을 맡았던 지상학 작가를 유프로덕션에서 처음으로 상면했고 그 후 지금까지 형제지간의 정을 나누며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지상학 작가 역시 작가생활 초년이었지만 충무로 에서는 많은 제작자나 감독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기대주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지상학 작가로부터 뜻밖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시나리오작가들인 동료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극영화 감독들까지 자기를 ‘망(亡)가 작가’라고 불러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당시 일본발음으로 만화(漫畵)를 가리켜 ‘망가’라고 하였는데 충무로에서는 만화라는 뜻의 ‘망가’를 속된 표현으로 망하다는 ‘망(亡)’자를 써서 ‘망가(亡畵)’로 사용했다. 즉 망할 수 있는 영화 또는 망한 영화 등으로 잘못 불리워 지상학 작가를 일컬어 ‘망가(亡畵)작가’라는 닉네임을 붙여 부르곤 했다. 이런 현상은 지상학 작가 본인에게는 요즈음 인터넷의 악플 정도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충격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그 후 만화를 그렸던 김청기씨는 만화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지상학 시나리오작가는 유명세 이상으로 홍역을 치르듯 충무로 영화인들인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질투심을 사게 되어 한 동안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후 지상학 작가는 ‘로보트태권V’라는 영화이야기만 나오면 아무리 대박인 난 작품을 집필했지만 세상사가 다 그런지라 쥐구멍을 찾듯 슬그머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지난 2005년 광주에서 제1회 영화아카데미를 개최하면서 시나리오부분의 특강을 지상학 작가에게 의뢰했었다. 그때 수강하는 40여명의 영화작가 지망생들에겐 과거 30년 전의 모습들과는 너무 다른 현상으로 그들에겐 지상학 작가는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그렇기에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새롭게 새겨졌었다. 아무튼 30년 만에 우리의 디지털기술로 복원되어 부활한 희망과 꿈이 되어버린 ‘로보트태권V’.

과거의 대박 상품이 요즈음을 사는 젊은이나 어린이들 가슴에도 ‘로보트태권V’라는 캐릭터가 우리 만화영화의 자긍심과 함께 애국심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어 참으로 필자는 행복한 마음 이루 말할 나위 없다.

박형균<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