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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순국 영령들을 추념하는 현충일 행사에 관한 보도들이 매스컴을 장식하더니 요 며칠 사이에는 6월민주항쟁 20주년과 관련된 내용들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이 땅의 민주화를 가져오는데 1987년 6월민주항쟁이 지닌 의미와 역할이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들은 이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 지나치게 소홀하거나 인색해 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80년의 봄’을 거치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우리들에게 12·12를 계기로 재등장한 전두환 군부세력은 5·18이라는 대살육을 통하여 대한민국을 다시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때 이후 7년여 기간은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온 국민들이 독재세력에 대항한 시기였으며 그 대단원이 곧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1987년 6월민주항쟁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는 바로 6월민주항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6월민주항쟁은 역사에 제대로 평가되고 기록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6월민주항쟁은 다른 어느 민주화운동과 달리 어떠한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 의해 주도된 운동이 아니며, 그 당시 장기간에 걸친 독재체제와 그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인권유린에 진절머리가 난 이 땅의 민중들에 의해 진행된 장엄한 ‘대서사시’라는 것이다.

박종철과 이한렬 등 그 당시 희생되었던 청년 학도들 누구도 어떠한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색채를 띤 세력에 속하지 아니하였고 순수한 학생들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광하문, 서울시청, 을지로 등 시가지 곳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샐러리맨들, 즉 화이트-컬러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참여한 것이 6월민주항쟁이었으며, 시골의 농부들마저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저녁 TV뉴스를 지켜보며 젊은 청년학도들의 민주화운동을 성원 하였던 것이다.

당시 외국에 머물고 있던 필자는 대학 기숙사에 배달되어온 고국의 신문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을 접해야 했는데, 거의 모든 유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신문을 빨리 보기 위하여 오전 11시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휴게실로 몰려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어떻든 우리는 6월민주항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에 성숙하게 되었고, 문민정부 탄생의 싹을 띠우게 되었으며 뒤이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등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혹독하게 폄하되고 있다.

물론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로 대표되듯 민주세력의 집권 10년 동안 경제가 침체되고 사회의 반목이 절제되지 못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민주화세력의 과오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거기에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요인들도 없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사사건건 발목 잡기를 마다하지 않는 수구세력들의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민주화세력의 반성도 필요하고 노선의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모든 운동과 현상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만약 그때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지 못하고 독재체제가 계속 유지되었다고 하여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하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6월민주항쟁 20돌을 맞이하여 그에 대한 평가에도 보다 성숙되고 열린 마음이 함께 했으면 한다.

오수열<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