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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설(殘雪)이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것을 보면 봄이 오는 것을 안다더니 국회의원의 당적(黨籍) 이동이 잦은 것을 보니 정치의 계절인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여 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는 시점에서 국회의원들의 탈당과 입당 그리고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전하는 소식이 TV와 신문의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생명은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됨으로써 유지된다고 할 때, 선거를 앞두고 그들이 당적을 변경하는 데는 결코 적지 않는 고뇌가 따랐을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임의로 당적을 변경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민의(民意)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근대이래 민주정치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흔히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꼽고 있다.

따라서 정당은 헌법에 의하여 그 활동이 보장되고 국가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종 선거에서 정당에 대한 지지여부는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지역에 따른 유권자들의 정당 선호도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후보자들이 그들의 능력과 자질에 의해서만 당선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주요선거에서 영남지역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없이 몇이나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며, 호남지역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천없이 얼마나 당선될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선거에서 지역기반을 가진 정당의 공천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 정당정치의 근간을 허물어뜨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이 정당을 보호·육성하는 까닭은 정당이 그 활동을 통하여 정치과정(政治過程)에 민의를 반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치발전에 기여토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당의 존립과 그 세(勢)는 각종 선거에서 자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의 숫자로 갈음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소중한 ‘공천’을 받아 당선된 사람이 “이젠 나몰라라”하고 탈당을 결행하여 당적을 변경하는 것은 선거 당시의 민의를 위배함은 물론 그러한 민의에 따라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정당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것이 될 것이다.

현행제도에서도 ‘비례대표제’에 의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탈당을 임기중 금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때, 지역대표의 경우에도 그 당적 변경에 일정 정도 제한을 두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임기 개시후 1년이 경과하지 않는 탈당은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 흔히 “잉크물도 마르기 전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당적을 바꾸는 것은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에게 심한 자괴감을 안겨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참여’에 대한 무력감을 남김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을 어지러운 정치판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하여 이들에 대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하겠다. 지역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것이 본분인 시장·군수들이 정치판의 이합집산에 끼지 않고 목민(牧民)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의 급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거를 통하여 확인된 민의에 근거하지 않는 정당의 활동은 민의의 반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까지 제약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지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여튼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당이 급조되고, 없어지고, 국회의원들의 당적 이탈이 비일비재하는 현상은 ‘양당제’의 정착을 통하여 국정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제도개선 이전에 국회의원들 스스로 처신에 신중했으면 한다.

오수열<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