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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조금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에서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초청장이 날아드는 것을 보니 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나 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정부에서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역의 활동가들이 ‘인수위원회’에 발탁되어 지방을 떠난다는 등 시끌벅적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러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쪽 지역이 아무래도 한 5년간은 권력으로부터 찬밥을 먹긴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8대 총선이 다시 석달 안으로 다가왔으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그 정치(政治)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데 요즘 지역정가(政街)에 때아닌 ‘남행열차(南行列車)’가 마치 무슨 유행가 가사라도 되는 것처럼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비 내리는 호남선’ 밖에는 모르는 필자가 그 내용이 궁금하여 한 기자에게 물어본 결과 그것은 서울의 유력인사들이 18대 총선에서 광주, 전남지역을 지역구로 택하기 위하여 너도나도 이 지역을 찾는 행렬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되다보니 쓸 만한 사람들은 죄다 출향(出鄕)하는 판에 선거 때만 되면 모두가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이 지역을 찾아 내려오니 말이다.

역시 시골은 서울 사람들에겐 핫바지이거나 몰쌍한 곳인가 보다. 특히 그들 가운데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내 노라 하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니 출세한 사람들에게 고향은 언제나 그들의 보급창 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

일찍이 중국의 진(秦)이 망하고 영웅들이 자웅을 다툴 때 항우(項羽)와 유방(劉邦)이라는 두 영웅이 있었다. 다 아는 것처럼 항우는 ‘역발산기개세’의 힘과 용맹을 지녔지만 지혜가 모자라 마지막에 유방에게 패하여 그의 고향으로 쫓겨 가게 된다.

그가 그의 고향인 강동(江東)이 지척인 오강(烏江)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정장(亭長)은 배를 준비하고 항우에게 어서 빨리 배에 오름으로써 추격해 오는 유방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후일을 도모하라고 독촉하였다.

이때 항우는 “고향 어르신들(老父兄)들의 기대를 저버린 몸으로 어찌 다시 고향에 의지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는가, 그들이 나를 받아줄지라도 내 마음에 부끄러운 일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대선에서 패배한 지역 정치인들이 그래도 당선 가능성이 높다하여 너도나도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며 과연 우리 지역에 항우만한 기개를 지닌 정치인이 한사람도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왠지 씁쓸해짐을 느낀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