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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주인인 국민이 준다.

그런데 그 권력을 주면 황금에나 눈이 어두워 일을 많이 그르치고 있다. 선조 때는 권력을 쥔 정승 이동고(李東皐)가 판서감으로 갑을(甲乙) 두 사람을 심중에 두고 택일하기 위해 인품을 견주어 보고자 이들을 데리고 술집에 갔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이동고와 종씨로 정실 아닌 소실 소생인지라 기생과 미리 짜고 다음과 같은 연극을 꾸몄다. 정승이 기생의 손을 끌어잡고 짐짓 "오늘 밤 나와 동침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기생은 "천첩이 대감을 잠자리에 모신다면 자식을 낳았을 때 지체가 이 두 영감과 같을 터이니 어찌 지극한 영광이 아니겠습니까"했다.

이 당돌한 기생의 발언에 따른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갑은 안색이 태연하여 못 들은 체하고, 을은 발끈하여 안색이 변하였기로 이로써 국량을 가늠, 등용에 참작했다 한다.

세종 때 선비 허성(許誠)은 소신있는 외고집으로 호조판서로 발탁되어 명재상의 이름을 남겼다. 그에게 청탁만 하면 반드시 청탁과는 정 반대의 결과를 안겨주어 ‘거꾸로 판서’로 불리었다. 남쪽 고을 원을 청탁하면 북쪽 고을 원을 시키곤 했다. 친히 아는 스님 하나가 단속사 주지가 하고 싶어 청탁을 했는데 그의 외고집을 역이용, 외탄 영명사에서 한적하게 있고 싶다 하며 단속사 같은 번잡한 곳은 딱 질색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단속사 주지로 배명 받았다는 정도다.

이처럼 재상감은 뭔가 꿰뚫는 심지(心志)가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인품을 인인(仁人), 중인(重人) 등 40개의 선품(善品)과 위인(僞人), 탐인(貪人) 등 40개의 악품(惡品)을 정해놓고 그 사람의 성품을 이 80품으로 분석, 선악을 상쇄(相殺)하여 플러스 10일 때 원을 시키고, 플러스 20일 때 재상을 시킨다든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품을 정하는 품격을 중국의 80품보다 한결 많은 5백13품으로 세분, 보다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인품을 분석해서 인재를 발탁했던 것이다.

근세의 실학자 최한기가 만든 인물평가 공식을 보면 기품, 심덕, 체용, 문견, 처지 등 다섯 가지 품성과 판단력·적응력·정서력·창조력·행동력 등 다섯 가지 능력에 각기 4등급을 매겨 순열 조합으로 도합 5백13가지 인품을 갈라놓고 그 인물을 평가, 적재적소에 발탁해 쓰도록 해놓고 있으니 동서고금에 이에 필적할 만한 어떤 평가 방법이 있었던가 싶다.

또 ‘양품(養品)’이라 하여 재상이 되면 재상이 요구하는 품성을 애써 기르는 것이 법도였다.

한데 현대에 와선 총리 등 혁심 각료는 국회 청문회를 통해 검증한다. 그러면서도 총리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발탁한 한승수 총리 내정자는 다를 것으로 보이나, 내치를 주도하는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총리도 아니고 대통령의 보조자인 미국의 부통령과도 다르다. 헌법에는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있다. 자구(字句)만 보면 대통령 바로 다음의 무거운 자리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않았다. 대통령들이 거의 ‘제왕적 대통령’ 수준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리의 힘은 법보다 인물에 좌우되었다. 역대 총리는 38명(서리 제외)이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 실세총리였다. 대표적으로 김종필·강영훈·이회창·이해찬 총리다. 힘이 없으면 의전·간판·허수아비 총리였다.

이원집정부제나 부통령제로 바꾸지 않는 한 현재의 총리직을 지혜롭게 운영해야 한다. 총리는 내각을 챙기고 여러 부처가 관여된 정책을 조정·지휘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실권은 없이 대통령 눈치만 보게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챙기기 힘든 업무는 총리에게 맡겨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고운석 <시인.남구발전협의회 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