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프린트하기

결코 짧지 않는 겨울방학도 지나가고 캠퍼스는 다시 젊은 학생들의 등교와 함께 생기를 머금어갔다. 이맘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대학은 학생들로 넘쳐나야 대학다움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지난 2월 25일은 이명박 제17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되었고 26일에는 우리 대학의 졸업식이 치루어졌다. 대통령의 취임식 일정을 미리 알고 졸업식을 하루 늦춘 것인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어떻든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25일이 졸업식’이라는 관행이 깨어짐으로써 꽤나 많은 구성원들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졸업식에 즈음하여 총장을 비롯한 여러 교수들이 졸업생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조대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같이 “희망과 포부를 가지라”는 격려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대학을 떠나가는 졸업생들에게 우리 대학이 진심으로 희망을 주고 포부를 지닐 수 있도록 교육하였고, 자부심을 안겨 주었던가? 말 뿐의 격려가 아니라 ‘조선대학교에서의 재학사실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대학의 이미지와 명성을 높여놓았는가를 겸허하게 반성하는 교수와 직원이 얼마나 될까.

요즈음 우리대학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인가에서의 탈락으로 심한 격동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주변에서는 ‘학교 역량의 거의 대부분을 로스쿨 유치와 체육진흥에 쏟는다’는 말이 나돌만큼 특정분야에 전력투구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로스쿨 유치에는 4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원이 투입되었다고 하니, 우리는 그러한 보도를 볼 때마다 스스로 부자대학(富者大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돈 잔치의 결과는 처참하고 처량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와 상대도 되지 않아 보였던 대학들에게도 떨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상황을 수습하는 집행부와 관계자들의 인식과 태도에 있지 않는가 싶다.

상황이 이쯤 되었으면 누군가는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할 터인데도 모두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아무 죄도 없고 책임도, 권한도 없는 법인이사(理事)들이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시중의 웃음거리만 되었을 뿐이다. 하다못해 충청도 S대학의 법대교수들도 광화문에서 삭발항의를 하지 않던가.

민주주의는 의회정치이며, 의회정치는 유권자에 대한 책임정치를 전제로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선총장제’하에서 총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대학운영 결과에 대해 그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원인과 과정 그리고 전망을 천천히 조망해 보아야 한다. 여건과 역량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유치를 추진했던 자가 누구이며, 인근 대학들의 치밀한 로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자가 누구인가. 우리 대학이 탈락하자마자 타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파렴치한 자가 행여 라도 정보를 빼돌리지는 않았는가.

물론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책임자를 규명하여 반드시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책임 있는 자의 자기반성을 유도하고, 차후에는 이러한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60년의 역사에 이만한 규모를 지니고 있는 대학에서 반드시 로스쿨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아닌 말로 법과대학이 없다고 하여 조선대학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혼란과 갈등을 빠르게 수습하고 정리하는 집행부의 능력에 있다. 언제까지나 그 책임을 교육부와 법학교육위원회에 전가할 것이며, 구성원들의 관심을 9월의 본인가 때까지 미루어 나감으로써 혼란을 연장시키려 하는가. 예비인가에서의 탈락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따지며, 차후 대책을 세우는 일은 ‘팀’급의 전담부서 하나에 맡기면 되는 일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바로 이러한 시기에 지도자의 역량발휘가 요구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대학이 무기력증에서 조속히 벗어나 제 궤도를 회복함으로써 어려웠던 시기에 대학을 설립한 ‘설립동지회원’들의 숭고한 기대에 부응하고 지역 민들에게도 안도감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