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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들길은 일렁이는 햇살에도 소리가 난다.

청보리를 밟고 오는 바람결, 흔들리는 풀잎에도 ‘차르륵 차르-륵’ 푸른 숨결소리가 난다. 지금 남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무심한 얼굴로 일 없이 창밖 만은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흙 냄새에 사무치는 고향이 없어도, 야윈 어머니의 서걱이는 무명치마 소리를 잊었어도, 남도 들녘은 분홍 꽃 융단을 깐 자운영 꽃밭, 꽃무더기가 널려 있으니.봄날 멀미하듯 고뿔로 골골하며, 꽃 피고 꽃 져도 아득히 가라앉던 육신이 풀꽃에 취해 “아! 곱다. 너무 곱다”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지상에서 / 빛나는 이름 하나 누가 물으면/ 꽃이여, / 내 숨결 모두어 낸 한 마디 말로/ 그것은 ‘꽃’입니다/ 고백하겠다.’ 시인 이향아님의 「꽃이 있는 세상」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세상은 꽃이 있어 가슴 벅찬데 어찌 아름다운 꽃에 취하지 않을 것인가. 자연이 주는 계절의 환희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미소가 화안하다.

여릿한 풀잎사이 목을 늘인 자운영 꽃으로 시계와 반지를 만들어 아이를 호사시킨다.

언제가 시계꽃 반지를 끼워주던 어머니처럼. 자운영을 한자로는 홍화채(紅花菜) 라고 쓴다. 중국에서 들어온 콩과에 딸린 두해살이풀. 땅의 폐해를 막아 땅심을 기르고, 벼농사의 풍년을 위한 녹비작물로 들여와 재배하던 것이 우리나라 각지에 퍼졌다.

벼의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여 벼의 생장에 유익한 푸른 비료이다.

가을에 씨앗을 뿌리면 이듬해 봄 모내기 전에 넓은 논에 일제히 진홍빛 꽃 무리의 장관을 연출한다. 그것도 잠깐. 모내기가 시작되면 이를 갈아엎어 논흙의 일부가 되어 녹비(綠肥)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 추위에는 다소 약하여 남부지방에만 귀화되어 봄이면 들판에 화사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자운영 꽃을 들여다보면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작약처럼 요염하지도, 백합처럼 청초한 향기로 매혹시키지도 않는다. 수수한 분홍 토끼풀 같지만 수천, 수만의 미미한 작은 풀꽃이 모여 무리를 만들고 더불어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자운영은 맛있는 나물이다. 꽃이 피기 이전의 푸른 잎을 날것으로 양념장에 살살 무치는 생채나 된장국은 입맛을 살려준다.

살짝 데친 다음 참기름에 무치거나,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면 맛있고,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갖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다.

잎을 씹어보면 단맛과 약간 비릿한 맛, 매운 맛, 떫은맛이 섞여있다.

맛은 혀 전체로 느끼지만, 혀끝에서는 짠맛과 단맛이, 바닥에서는 쓴맛이, 가장자리는 신맛이 느껴진다. 맛의 지각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익히는 것으로 개인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한 국가의 음식이나 지역의 향토식품이 다른 지역에서는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운영은 약초로도 쓰였는데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히며 눈을 밝게 하고 소변을 잘나오게 한다.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미식가 협회는 18세기에 만들어진 ‘기쁨협회’였다.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음식의 맛과 향, 조리법, 신선도, 씹히는 질감 등을 음미하고 기쁘게 먹었을 것이다.

오월의 들판에서 자운영샐러드나 생채를 먹는다면 미식가들은 어떤 평가를 할까?

신선한 공기와 마음이 담긴 계절음식이 가장 좋은 먹거리이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다. 날 것일수록, 섞지 않을수록 좋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조리가 간단해지고,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

‘헬렌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메뉴 같은 자운영으로 봄날의 식탁을 차리고 싶다. 무르익은 봄바람이 싱그럽다.

김정숙 (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