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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호인 남대문(숭례문)이 소실된 지 수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 더 높이 웅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국가의 액풀이라 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기에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전율과 분노가 가셔지지 않음은 나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기억하는가? 남대문 방화와 함께 터져 나왔던 문화재 관련의 장밋빛 청사진들을...그런데 문화재 보호나 지킴과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 의식의 변화와 당국의 정책 수립 등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국보를 잃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때의 슬픔과 분노를 잊어들 가고 있는지,

아무리 냄비 같은 속도의 시대를 살고들 있다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아쉬움 천만임은 나의 지나친 기대 때문일까? 흔히들 절로 터진 입이라고 말들은 잘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노천 박물관 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국토 어디를 가드라도 지천에 널려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과의 만남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것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훼손하고 파괴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닐 터인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감이 적질 않아 유감이다.

비근한 예로 가까운 산사를 떠올려 보자. 사격(寺格)과 절의 소속 등을 알리고 있는 초입의 일주문부터 시작하여 맑고 깨끗한 시내를 끼거나 수 백 년은 족히 곱게 늙은 아름드리 수목 틈에 서 있는 금강문과 천왕문, 대웅전과 같은 주불전(主佛殿) 등을 비롯해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다는 탑과 이 어둡고 험한 사바세계를 환하게 밝힌다는 석등, 여러 고승과 대덕 그리고 스님들의 무덤인 부도전, 어디 그뿐인가?

죽은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조석으로 울어대는 종(범종)과 네 발 달린 축생의 성불과 극락왕생을 위하여 둥둥둥 제 몸을 두들기는 북(법고), 그리고 하늘을 나는 날 것들을 위하여 허공 향해 노래하는 운판이며, 물 속에 사는 것들의 해탈을 기원하며 밤새 한눈도 팔지 않는 목어 등 국보에서 보물 그리고 각 광역자치 단체에서 지정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재가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의 눈길과 발길 그리고 마음결을 붙잡아 당김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말없이 우리 민족은 물론 우리 역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저 살아 있는 우리의 무가지보(無價之寶)들이 국가의 방치와 무관심으로, 지방 정부의 입에 달린 예산타령 속에, 국민들의 인식부족으로, 언론의 공감대 형성 부족과 교육 당국의 교육부재 때문 등으로 나날이 시나브로 망가지고 있음에 슬프기 한량없다.

문화재와 노인은 역사의 증인이요, 오늘을 있게 한 존재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같다. 바야흐로 역사가 흐른 만큼 문화재가 쌓이듯 세월의 무게 따라 묵은 켜가 커지듯 노인들은 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인 정책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일이 닥쳐서야 허둥댈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지혜는 후손들의 필수불가결한 도리가 아닐 수 없다. 노인당 등에 모셔서 식사나 여흥 등을 대접하는 일도 물론 아니해서는 안 될 일이로되,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 또한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니다. 이쯤해서 제 이 제 삼의 문화재 손실이 있기 전에 노인분들의 품을 통한 문화재 지킴이 또는 보호 활동을 제안하는 바이다. 벼는 벼끼리 선다는 말이 있다. 문화재와 노인이라, 곱 늙은 생명들의 이 얼마나 멋진 상생의 조화인가! 이제 더 이상 이땅 어디에서든 무슨무슨 문화재가 도난당했다는 둥, 귀중한 유산이 훼손되었다는 등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말이 나오지 않기 바란다.

노인을 위한 정책은 능양(能養: 단순히 봉양만 하는 것으로 효도를 다 했다고 여기는 행위)에 그쳐서는 아니 된다. 단순히 길러만 주는 행위는 동물들도 새끼를 길러주므로 본능적 행위 아닌가? 그러므로 노인을 위한 일에는 반드시 공경하는 마음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노인이 공경받고 잘 봉양받는 나라,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지금 연두 혹은 녹색이라 으스대는 젊은이여, 그대는 지금 인생의 늙음 길을 어디쯤 가고 있는지....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