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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오늘 스케줄이 어때요? 왜, 오늘 세미나가 있어서 조금 뒤에 역에 가서 참석자 두 명과 미팅한 다음 행사장으로 픽업해야 하는데...그래요, 나도 오늘 레지오 미팅이 있어서 차 좀 쓰려고요.’ 위와 같은 대화는 우리가 아주 흔하게 일상에서 접하는 내용인데 그래 무슨 느낌이 드는가? 이른바 지금은 국제화 시대라고 입만 열면 외국어 타령이다.

그러니까 국제화 시대는 곧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일종의 묵시적 의무 사항인 냥 떠들곤 하는데 글쎄 그래도 되는 것인지 한번 따져 볼 일이다. 필자가 중국에 있을 때 절강대학 학생이 왜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마구 쓰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데 영언지 한국어인지를 모르게 그냥 무의식적으로 마구 쓰는 바람에 여간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외국어와 외래어가 너무 많다. 일상에서 누구나 막 쓰는 텔리비전, 컴퓨터, 미팅, 햄버거, 인스턴트 등은 물론이고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은 엠앤에이, 알앤디, 니고시에이션, 햄, 메인스트림 등 흡사 다른 나라 말 전시장 같다. 참으로 우습게도 국어사전은 없어도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 사전은 다들 챙기고 있으니 국어 사랑은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게 저만치 멀어져 가는 것 아닌지.

이러다간 국어사전이 온통 남의 나라 말 ‘공동묘지’가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무겁게 다가섬은 나만의 기우 때문인가? 한국문학을 정의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표기가 한국어 일 것, 제 일 독자가 한국인이며 그 내용에 있어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가 심층미학으로 작용하고 있어야 할 것 등등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이름> <두만강은 흐른다> 등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를 담고 있는 소설들일지라도 그 표기가 앞에 것은 영어로 뒤는 독일어로 되어 있으므로 제 일 독자는 물론 한국인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두 작품을 한국문학으로 간주하려는데 주저주저하고들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이 영문학이나 독문학으로 간주되고 있는가?

그들 역시 꺼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대답은 간단하다. 사상과 정서가 한국인의 것이며 작가 또한 한국인 이라는 점을 들고 나선다. 말이 이쯤 나왔으니 모국어와 그 모국어를 쓰는 언중(言衆)의 사상과 정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상관관계임을 알 수 있겠다. 흔히들 아는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어떤 행동이나 습관이 조기에 체득되면 그만큼 쉽사리 고쳐지거나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뜻일 터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함은 물론 자원이 부족한 나라임을 직시하여 원만한 국제 관계로써 여러 난제를 풀어나가려면 조기에 외국어를 체득케 하여 그들을 외국어 언중으로 길러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자아의 정체성 확립 이후에 타자(他者)도 있는 것이며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인식되고 삶은 나를 중심으로 영위되는 것이므로 나를 나이게 하는 가장 확실한 ‘유전자’인 모국어에 집중과 몰입을 해야 할 것인지,

우리는 분명하게 방향을 잡아야할 것이다. 어머니께서 이순신 장군 전기를 먼저 읽어주고 나중에 나폴레옹 장군의 전기를 읽게 한 아이와 순서를 그와 반대로 한 아이와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이순신 장군 같은 나폴레옹이냐, 나폴레옹 같은 이순신 장군이냐의 차이는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답니다. 사랑은 늘 움직이는 거라고 한다. 하여 모국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저만치 가게 해도 되는 것인지? 미국에서 영어 몰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번역했다는 쇠고기 협상문의 오역(誤譯)이 저렇게도 많은 촛불로, 가없는 분노의 함성으로 날로날로 힘 받는 것을 바라보노라니 컴퓨터를 전뇌(電腦), 텔리비전을 전시(電視) 등 자기 것으로 만들고는 보급시키는데 애쓰는 중국 사람들이 달리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버지, 지금은 저 다른 나라에 계신 당신, 나의 부모를 부모로 모실 줄 아는 사람이 남의 부모도 섬길 줄 안다는 맹자님의 말씀이 가슴 저리게 하는 참 씁쓸한 아침입니다.

최한선<한학자, 전남도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