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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는 말 없어도 정은 많고 많아/ 언제나 겨울 지나면 새봄이 올 줄 알고/ 천자만홍千紫萬紅을 완전히 준비해 두고/ 새봄이 온다는 우레 소리 기다린다는 시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렇다. 언젠가 찾아 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평소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자세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삶의 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사노라면 발전하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기회가 잘 오지 않음 보다는 그 소중한 기회를 자기가 뜻하는 대로 활용치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 안타까움 천만이다.

그러나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기회를 누군가로부터 부여 받은 경우, 그 부여의 조건이나 자격이 고르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동화를 보자. 초등학교 시절엔 이 동화의 ‘주제’에 관심을 두는 학습을 했었다. 그래서 자신의 빠른 발을 믿고 경주 도중에 낮잠을 자버린 토끼가, 쉬지 않고 성실하게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기어갔던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으니, 우리 학생들도 토끼처럼 자신의 능력만 믿고 게으르거나 꾀를 부린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자신이 부족하더라도 그 약점을 메꾸기 위하여 매사에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마침내 훌륭한 인물이 되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론을 주입 받았던 기억이 역력하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 시절 살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우수운 아니 조금은 분노가 이는 경주가 아닌가? 어떻게 토끼와 거북이가 같은 출발점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경주를 할 수 있는가? 말이 안 되는, 아무리 발상의 전환이라는 명분으로 미화시킨다 해도 쉽게 납득되지 아니한 경주 아닌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경주 보다는 그것을 하는 조건이다.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토끼로 비유되는 상대가 과연 낮잠을 자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토끼는 더욱 더 빠르게 뛰고 있으며 더구나 불철주야 성실하게 노력을 하고 있잖은가 말이다. 우리가 배운 동화의 경우 거북이가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토끼가 반드시 낮잠을 자 주어야만 가능할 뿐만 아니라, 거북이는 한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완주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요망된다. 그런데 그게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 수 있는지... 미국이 토끼라고 생각해 보면 쉽사리 납득 되고도 남을 것이다.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네 현실을 보자. 귀가 따갑도록 오늘의 사회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 참으로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경쟁은 정정당당하게 치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의 조건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동네 앞동산만 오른 사람에게 거대한 태산을 모른다고 나무라는 격이 되어선 곤란하다.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새 정부가 출범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가려운 데를 비빌 수 있듯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조건의 경쟁 기회를 부여하여 정정당당하게 인재를 선발하고 그들을 키워 내어 이 나라 이 조국의 미래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 이제 자신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주위를 둘러보자. 과연 보이는 것이 어떤 것들인가.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일테니까...요컨대 경쟁의 조건이 전제되어야 모두가 균등한 기회로 믿고 따를 것이며, 그래야만 진정한 화해의 시대가 열려 금수강산 자랑하며 오순도순 살아갈 것인데...

최한선 (남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