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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나주 출신인 최부(崔溥)선생이 지은 표해록(漂海錄)은 중국 3대 기행문의 하나다. 그는 6개월에 걸쳐 고향에 돌아오는 기간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누면서 의사를 전달하였다.

또한 박지원(朴趾源)선생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필담을 나눈 모습이 보였다. 한자(漢字)란 동양의 언어다. 그런데 우리는 동양 3국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려운 한문 투의 말을 쓰자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것을 배우자는 것이다.

몇 년전 전교육부장관들이 교육부장관을 만나 초등학교의 한자교육을 건의했고, 김영삼 전대통령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은 영어교육과 함께 절대필요'란 주제로 특강한 적이 있다. 김종필 전국무총리도 주민등록증에 한자표기를 병기해야 한다면서 강력히 추진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한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의 한자 실력은 낙제점이다. 학생 상당수가 학과(學科)의 독음을 '학교'로 읽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만하다. 배수진(背水陣)을 '배수차' 내홍(內訌)을 '내공' 패배(敗北)를 ‘패북’, 요산요수(樂山樂水)를 ‘악산악수’ 등으로 읽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인위적(人爲的), 유산(遺産), 주도적(主導的) 등 비교적 평이한 한자어에서도 틀린 답이 많았다.

과목(科目), 문화(文化), 통일(統一), 청춘(靑春), 특별(特別) 등은 제대로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 한다. 중. 고교생들은 학교에서 모두 1800자의 한자를 배운다. 이를 익히면 대학 교양국어 교재의 한자를 막힘 없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그런데도 F학점 받을 정도로 한자에 문맹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본인의 관심과 노력 부족에서 비롯되지만, 한자 교과과정의 부실과 교사의 불성실한 지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수능시험에 한자 실력을 검증하는 영역이 없다는 점이다.

대입에 한자 문제가 나오지 않으니까 학생들이 한자 공부를 등한시하고, 교사도 열심히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 이하의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 과목에 집중되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한심한 모습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한자를 모르면 원만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고전에서 옛 성인의 지혜를 얻기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생활에도 어려움이 많다. 동북아의 경제교류 증가로 한자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중국과 일본의 거래처와 한문으로 된 명함을 교환해 서로 알 수만 있어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가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한자과목을 포함시키고, 일반 기업체에도 한자 구사능력을 검증토록 권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학생들의 한자 해득력을 키우는 첩경(捷徑)은 입시에 반영하고, 교과서의 국. 한문 혼용으로 하는 것이다.

한글학회나 시민단체가 또 다른 부담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일리가 있으나, 한자를 제대로 알고 써야 우리말과 글도 발전한다.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에서 신문을 읽으면, 읽을 수는 없지만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수월히 해서는 안 된다. 정말 깊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문자이다. 우리나라 외국인 관광객 70%가 한자문화권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거리 표지판(標識板)에 한자병기가 있어야 한다. 한자 모르면 어휘력이 늘지 않아 활용 중심의 실용적 교육 필요하다.

''민중봉기''라는 말이 있다. '봉기'의 정확한 뜻을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봉기는 벌봉(蜂)자에 일어날기(起)자를 써서''벌떼처럼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만들어져 있다. 한자를 배우지 않아 어휘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이미지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한자를 모르면 정확한 어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꼭 맞는 어휘를 골라낼 수 없어 깊이 있는 사고력도 기를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簡體字)로 바뀔 것이다.

요즈음 지자체에서 중국의 손님을 맞이할 때 간체자를 쓰는 것은 망신스러운 일이다. 마땅히 우리 한자를 써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姜元求 <동신대 초빙교수. 한중문화교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