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탑뉴스 칼럼/시사/논평 건강•웰빙 화순뉴스 광주뉴스 전남뉴스 전북뉴스 광명시 정부•정치소식 국제뉴스 문화•관광 여성 성명서
2017년 7월 20일
연극을 "최경회와 논개의 애절한 사랑"
연극으로 전국 순회 공연은 화순 이미지 급 상승
"운동선수 양성 보다 수십배 홍보 효과 커!"
문화관광사업으로 개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해야 !
입력시간 : 2015. 11.13. 00:00


화순의 자랑 의병장 최경회 장군(선생)과 40여살 차이가 난 논개와 애절한 사랑을 연극으로 재현 할수 있는 길을 열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각본을 쓰고 배우를 모집해서 화순군의 이미지 예술로 승화 시킴으로서 화순이 낳은 의병장 최경회와 그의 후처 논개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이를 각본화해서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면, 더 이상의 홍보는없을 것이다.

이 사업은 운동선수 양성의 10갑절의 관광효과가 예상된다.

우선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화순군이 기초작업을 하고 관계 협동조합이나 선양회에 위탁사업으로 전개해야 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화순군이 협력과 지원을 하면 이 문제는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남도지방에는 실제 역사인물을 연극으로 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를 화순에서 제일먼제 시행해서 전국 순회공연이나 화순을 찾는 관광객에게 관람토록 함으로서 논개 공향인 장수에 앞선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화순군은 세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할 필요가 절실할 것이며, 문화관광상품으로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진주성과 최경회와 논개의 사연이 서려있는 역사를 스케치 했다.<편집자>

▶진주성과 논개와 의암

진주성을 둘러보는 여행길에 촉석루와 의암을 보면, 가슴 먹먹함 같은 뭉클함이 밀려왔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최경회(崔慶會)의 후처인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바위이며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다.

면적은 약 400㎡에 이르며.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 싸움으로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이에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틈을 노리던 중 왜장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촉석루에서 연회를 열어 희희낙락 하는 곳에 참석하였으며 참석한 여러 명의 기생 중 한명으로 자원하여 참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손가락 모두에 가락지를 낀 채 남강의 바위로 왜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남강이란 곳은 작지만 거대해 보이는 바위가 두 발짝쯤 떨어진 곳이 있다. 물의 깊이로 봐도 상당해 보이는데 이곳에서 적장을 유인해 목숨을 다했다니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지아비에 대한 사랑과 더 나아가서는 나라사랑의 마음씨가 느껴진다.

단순한 원수일지라도 높이 살만한 참으로 의로의 행동이 아닌가.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진주 지방의 양반들과 백성이 이 바위를 의암이라고 하였다.

1629년(인조 7) 정대륭(鄭大隆)이 바위벽에 <의암>이라는 글씨를 새겼고 의암의 강 쪽 절벽에는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고 새겨 충의를 기리고자 하였다. 2001년 9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촉석루에 뿌려진 가슴 아픈 사랑, 의병장 최경회 & 논개

삼계(三溪) 최경회(崔慶會, 1532~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532년 전라도 화순 능주에서 태어나서 양응정과 기대승에게 수학했다. 과거에 합격하여 장수현감, 무장현감, 영암군수, 담양부사 등을 지내다가 모친상을 당해 벼슬을 버리고 화순으로 낙향하였다.

모친 삼년상을 치르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첫째형 경운, 둘째형 경장, 아들 홍기 등과 함께 화순에 의병청을 세우고 의병을 모집하였다.

1592년 4월 왜군이 호남의 관문인 진주성을 침략하자 진주목사 김시민과 홍의장군 곽재우를 비롯한 관군, 의병, 백성이 합세하여 왜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었다. 39세의 진주목사 김시민은 이 싸움에서 순절했고 3,800명의 조선군은 20,000명의 왜적을 물리치고 곡창 호남을 지켜냈다.

이를 ‘제1차 진주성 전투’라고 한다.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꼽힌다.

1593년 6월 왜군이 진주성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다시 대병력을 투입하여 진주성을 공격하였다. 경상우병사 최경회, 의병장 김천일, 의병장 고종후 등이 맞서 싸웠다. 조선군과 의병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였고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최경회는 62세의 나이로 김천일,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 남강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이를 ‘제2차 진주성 전투’라고 한다.

영조는 최경회에게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리고 좌찬성을 추증하였다. 능주의 포충사, 진주의 창렬사, 장수 월강사에 배향되었다. 전라도 화순에 조선 순조 때 세워진 최경회의 사당이 의병장의 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논개를 사랑했던 의병장 최경회, 능주에 자취 남아

1621년 류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논개는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고 논개(論介, 생년 미상~1593)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구전에 의하면 논개는 전북 장수군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양반 주달문의 딸로 태어났다고 한다.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관기가 되었고 다시 최경회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왜군들은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였다. 논개는 최경회의 원한을 갚기 위해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와 함께 남강에서 뛰어내려 함께 죽었다.

1846년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전라도 장수 주촌마을에 논개 생향비(生鄕碑)를 건립하고 비문에 ‘촉석의기 논개 생장향 수명비(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라고 썼다.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칼럼/시사/논평
<時事>인생은 바둑판과…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씨앗은 씨앗이라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새싹을 내며 꽃을 피운다. 그러나 때가 되…
무료광고
한양립스 송경덕 010-…
화순 한양립스 아파트 본격 분양에 나선다 "화순 최초 지역주택조합 610세대 분양" 화순 최초 지역주택조…
특허청 등록 신청 "적벽 빵" 에 대한 관심?
관심이 매우 높다.
기다려진다.
보통이다.
별로 관심없다.
Copyright ⓒ 2005-2007. 유한회사 파인뉴스(www.파인뉴스.kr). All right reserved.

등록번호 : 전남 아 19호등록 : 2006년 3월 31일전화 : 061-374-0451휴대폰 : 010-9912-4055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칠충로 53문의메일 : 470choi@hanmail.net발행인 : 최재승 / 편집인 : 최재승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