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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9일
<강원구 칼럼>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12)
남쪽의 서울 남경(南京)
주원장의 효릉(孝陵)
입력시간 : 2018. 05.15. 00:00


남쪽의 서울 남경(南京)

장개석이 대만으로 후퇴하면서 국보급 보물들을 많이 가지고 가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모택동은 이를 보고, ‘머지않아 우리 것이 될 것인데, 무엇 하러 폭파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만 고궁박물관에 중국 본토의 것 60만 점과 대만의 귀중품 10만 점이 있어 3개월에 한 번씩 교환하는 데 16년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대만 사람들은 중국이 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경은 삼국시대 손권이 동오를 세울 때 건업(建業)이라 불렀으며, 당나라 시대에는 금릉(金陵)으로 불러지기도 했다. 이곳은 동진, 송·양·진(陳)·명나라가 도읍을 정한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시대 이백은 정치가 혼란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간신들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것을 빗대 봉황대에 오르면서 우국충정의 시‘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를 지었다.

옛날 봉황대에 봉황새들이 놀았다는데,

지금 봉황은 날아가고 강물만 흐르네.

오나라 궁궐터에는 잡초만 우거졌고,

진나라의 화려함은 어디로 갔는가.

삼산(三山)의 절반은 하늘 밖으로 보이고,

이수(二水)는 백로주(白鷺洲)를 사이로 갈라졌네.

뜬구름(간신)이 해(황제)를 가렸으니,

장안이 보이지 않아 근심만 쌓이네.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상봉황유

鳳去臺空江自流 봉거대공강자류

吳宮花草埋幽徑 오궁화초매유경

晉代衣冠成古丘 진대의관성고구

三山半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二水中分白鷺洲 이수중분백로주

總爲浮雲能蔽日 총위부운능폐일

長安不見使人愁 장안불견사인수

지금은 남경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봉황대는 없지만, 열강루(閱江樓)가 대신하고 있다. 열강루는 사자산에 위치하며, 명나라 시대 모형으로 지은 건축물로 평면 설계가 ㄴ자형으로 정면이 북을 향하고 있다.

손문의 능인 중산릉은 남경 동북쪽의 자금산에 있는 것으로,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만들었다. 묘지 앞에 광장이 있고, 광장에는 손문 선생의 석상이 있으며, 남경의 제일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묘 아래에서부터 약 1.5km 정도 걸어갈 수 있으며, 파란 기와집으로 만들어져 있다.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기념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일본 하면 1937년 남경 대학살을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경대학이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중국인 응답자 대다수가 일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남경대학살을 꼽았다. 이것을 보면 중국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1937년 여름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군은 파국지세로 천진, 북경 등을 거쳐 11월 상해를 점령했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던 남경이었다. 9만 명의 일본군이 양자강 남쪽의 이 도시를 3면으로 포위해 들어가자 장개석은 성 함락 5일전 군대를 이끌고 중경으로 퇴각했다.

남경에 입성한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7일 간에 걸쳐 시민 30만 명을 살해하였다. 어찌나 목을 빨리 치던지 목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칼날이 목 밑을 지나가는 사진은 당시 일본군의 잔학성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이곳 기념관에 사진과 생존자의 증언이 있으며, 발굴된 유골들은 유리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일본의 양심이 있는 학자들이 쓴 <남경 학살사건을 밝힌다>라는 책도 있다. 1985년에 개관한 기념관 벽에 30만 명의 희생자 수를 나타내는 부조가 있다. 백기를 든 군 포로들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을 총검술 훈련 혹은 ‘목베기 시합’의 대상물로 삼아 무자비하게 희생시켰다. 어린 소녀, 노인 할 것 없이 무차별로 살해해 버렸다.

사람을 산 채로 파묻고 배를 가르거나 사지를 자르는가 하면 연료를 쏟아 부은 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한 생존자는 훗날 ‘마치 하늘에서 비 아닌 피가 쏟아져 내린 듯했다’고 끔직했던 참살 현장을 되새기고 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 당시 남경 잔류 인구의 절반 가까운 약 30만 명에 이르렀다. 미국 새너제이 머큐리지는 ‘사망자들의 손을 잡으면 남경·항주의 322km를 이을 수 있고, 흘린 피의 양은 1천 2백 톤, 시체는 기차 2천 5백 량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싣기도 했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야만과 잔혹성의 극치를 보였던 일본은 그러나 전후 그런 사실을 철저히 숨겼을 뿐만 아니라 남경 대학살 자체를 부인하고자 했다.

동경(東京) 도지사를 지내 이시하라는 ‘일본이 남경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이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오사카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남경 대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며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나서 내외로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주원장의 효릉(孝陵)

주원장(朱元璋)은 명나라를 건국한 사람으로 그의 능묘는 효릉(孝陵)이다. 그런데 효릉의 입구에 여러 형상들의 석상들이 즐비하고, 여기저기에 많은 비석들이 있지만 정작 있어야 할 능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산 전체가 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안휘성 봉양(鳳陽)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떠돌이 생활을 거듭하다 황각사라는 절로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농민 세력인 남방계 홍건군이 난을 일으키자 이에 합류했다. 이때 그는 28세로 농민군의 우두머리인 곽자흥(郭子興)이 사망한 후 부장에서 일약 최고 지도자로 떠올랐다.

그가 농민 운동에 참여할 때, 중국 전역은 농민들의 반란으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원(元)나라 사회의 두 가지 모순인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을 만큼 비등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일화가 있다. 망해가던 중국 원나라는 소금 장수 출신의 장사성(張士誠)과 주원장의 대결로 압축됐었다. 주원장이 장사성의 주력 부대를 포위코자 험악한 산을 넘어 후방으로 돌고 있을 때 일이다. 협곡의 외길 복판에서 살아 있는 오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새끼 품은 짐승을 해치면 업보를 받는다는 동승 시절의 믿음이 떠올랐다.

주원장은 사활이 걸린 그 작전을 포기하고 그 산 오리가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아 제 발로 길을 비킬 때까지 여러 날을 기다렸다. 물론 작전은 탄로 나고 전세는 불리하게 기울었다. 한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적의 부장들이 부하를 거느리고 속속 주원장 휘하로 투항해 왔다. 천하를 얻고 잃는 그 큰 전쟁을 한낱 오리의 생명을 위해 유보하는 인간적 장수라면 그 휘하에 들어가는 편이 옳고 장래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천하를 얻었던 주원장이다.

명나라는 역대 어느 왕조보다 강력한 황제권을 성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황제의 직접 통치를 위한 전제왕정을 확립하기 위해 우선 총리격인 승사의 자리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비서 기관인 대학사 제도를 확대하고, 친위 세력인 환관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아울러 지난날 황제권의 약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던 계승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장자 계승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그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태자가 일찍이 사망하여 어린 손자가 황제를 계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자, 어린 세자의 삼촌인 아들들을 변방으로 보내 황실의 위기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려고 했다.

즉 그의 자식들을 국경 수비를 빌미로 친왕(親王)으로 책봉하여, 세 차례에 걸쳐 변방지대로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승한 것은 어린 장손자가 아닌 넷째 아들 영락제(永樂帝)였다.

1394년 조선 태조 때 아들 이방원이 남경에 사신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북경에서 영락제가 황제로 오르기 전 연왕(燕王)으로 있을 적에 이방원이 두 잠룡(潛龍)을 만난 적이 있었다.

/ 강원구<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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