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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숲에는 보라빛 칡꽃이 곱다. 다른 물체를 친친 감고 올라가는 덩굴성 식물이지만 칡은 분명 나무이다. 털이 뽀송한 칡의 새순은 사슴뿔 같은데, 칡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철없는 아이처럼 산길까지 기어 나오는 칡넝쿨을 볼때면 나는 넝쿨을 들어 숲쪽으로 돌려놓곤 한다.

햇살이 따스한 봄이면 학교 앞에는 으레 칡장수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우우 교문을 나서면 우리가 “나무꾼”이라 불렀던 아저씨는 지게 위에 얹힌 아이들 허벅지만큼 굵은 칡뿌리를 가르키며 “야! 밥칡이다 밥칡. 한 번 맛보고 사라이. 밥이 고봉으로 나온다 잉!”하면서 톱으로 쓱쓱 잘라 조금씩 맛배기로 주었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내밀었는데 운 좋게 조금 얻어 질겅질겅 씹으면 밥알 같은 알갱이가 나오던 밥칡. 씹을수록 달착지근하면서도 싸하던 칡의 맛과 향기를 잊을 수 없다. 아저씨는 때로 나무칡을 밥칡이라고 우기기도 했지만 우리는 얻어 먹으려는 욕심으로 “에-이! 나무칡이네” 하면서도 손은 벌렸다.

소학(小學)에는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人能咬得菜根, 則百事可做)고 했다. 풀뿌리를 캐어 씹는 마음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청렴과 검소한 생활태도를 말한 것이다.

풀뿌리 중 식용으로 유익한 칡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해있다. 칡은 갈(葛)또는 갈등(葛藤)이라 하며 당분, 섬유질, 무기질과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어 건강에 좋다. 땅속에서 막 올라온 새순은 그 맛과 향이 녹용과 비슷하고 지속적으로 쓰면 효능도 비싼 녹용 못지않다. 어린 순으로 나물을 해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고 쌀과 섞어 칡밥을 짓기도 한다. 잎과 꽃은 차를 만들고, 뿌리나 꽃으로 담근 술은 약술이 된다.

오래 묵은 칡뿌리는 전분이 많아 흉년에는 구황식으로 이용해왔다. 대중에게는 구황식량이었지만 상류층에서는 별식의 재료였다. 갈분에 녹두가루를 반죽한 갈분국수, 생강즙과 꿀로 반죽한 갈분다식, 갈분에 메밀가루를 섞어 찐 갈분개떡, 멥쌀가루와 섞어 쑨 갈분죽도 있었다. 칡국수는 혈중산소공급량을 증가시키는 효능이 있어 혈관병으로 걱정하는 분에게 권할 만하다.

갈분을 묽게 쑤어 생강즙과 꿀을 탄 갈분의이(葛粉薏苡)는 술이 깬 뒤에 먹는 음식으로서 애주가의 아내들이 익혀두면 좋은 민속식이다. 제주도에서는 칡을 ‘곡불히’라 하며 갈분으로 고은 ‘갈근엿’은 위장병에 좋다 하여 먹었다.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든 잊혀진 음식들이다.

귀중한 의서 「본초강목」에는 “갈근은 울화를 흩어 버리고 술독을 풀어주며 갈꽃은 장풍(腸風)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칡잎은 지혈작용이 있어서 연장에 베었을 때 잎을 비벼서 붙이면 지혈이 되고, 갈분물은 약물중독 환자의 해독 효과가 크다 한다.

칡차는 갈근차라고도 불리는데 알콜을 빠르게 분해 배출하는 효과가 높아 주독과 숙취를 푸는데 그만이다. 생즙은 냉장고에 보관해야하고 가능한 공복에 마시는 것이 좋다. 생칡즙을 구하기 어려우면 약효는 떨어지지만 시판되는 칡차에 꿀을 타서 마셔도 좋다. 중년기 이후에 오는 어깨결림에도 좋다.

연근, 우엉, 더덕, 당근 등 뿌리채소는 흙에서 바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박테리아와 효소, 미네랄 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포를 싱싱하게 하고 활기있게 하는데 뛰어난 작용을 한다.

먹는 것이 풍족해 병이되는 현대에 구황식물은 비만치료와 체중감량을 위한 식이요법에 사용될 수 있다. 칡은 공복감은 줄이고 영양분의 과잉은 막아주면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 다이어트식으로 개발해도 좋을 것이다.

김정숙 (논설위원.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김치발효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