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빈곤한 음식의 상징인 보리밥에 파국. 어느 날 딸집에 들렀던 주자(朱者)에게 딸은 보리밥에 파국뿐인 ‘총탕맥반’을 차려 냈다. 모처럼 오신 친정아버지에게 간장을 푼물에 파만 썰어 넣은 파국을 낼 수밖에 없는 딸은 몹시 면구스러워했다. 총탕맥반은 가난한 사람이 연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기에 딸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눈치챈 주자는 말했다.

“파는 단전(丹田)을 보하고, 보리는 굶주림을 가시게 하느니라. 이 두 음식 모두가 자양이 좋은 것이니 고맙게 먹겠다.”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배려를 비유할 때 자주 인용하는 문구이긴 하나 근거 있는 말이다. 파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행을 원활하게 하며 생선 독을 해독시킨다.

파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3,000년 전 중국 서북쪽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후한시대의 장수 요흥(姚興)은 군량으로 파를 필수로 삼았는데, 군사들에게 파를 먹이면 사기가 올랐던 체험을 바탕으로 둔 것이다. 파는 군량뿐 아니라 구급약으로도 필수였다. 졸도하여 죽은 사람이 있을 때, 파의 노란 심지를 남자는 왼쪽 콧구멍, 여자는 오른쪽 콧구멍에 꽂아두면 코피를 흘리면서 되살아난다 했다.

움파는 ‘총아’ 라고도 하는데, 양귀비의 양아들이자 그녀의 정부였던 안록산이 항상 젊음을 유지했던 비결은 모든 음식에 파를 넣어 먹은 것이라 한다.

고대중국문헌인 「예기(禮記)」에 고기회를 먹을 때, 봄에는 파와 더불어 먹고 가을에는 갓과 더불어 먹는다 했다. 생선회와 생선찌개에 파가 필수인 것은 파가 생선 비린내를 중화시키고 해독시킨다.

국에는 파가 필수인데 이는 맛을 돋구는 외에 고기맛을 연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파가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문헌인 <향약구급방>에 파가 약재로 나오며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집에도 다음과 같은 시가 기록되어있다.

“가냘픈 손인양 무성한 파줄기 옹기종기 많은데/ 아이들 그 잎 뜯어 피리삼아 불어댄다./술자리에 좋은 안주가 될 뿐 아니라/ 고깃국에 파를 넣으면 맛이 배가하니 그 아니 좋은가”.

파는 오신채의 하나로 입춘날이면 시식으로 먹는 음식 중의 하나다. 오신채란 이른봄에 나는 매콤한 봄나물로 움파·산갓·당귀싹·미나리싹·무의 다섯가지 햇나물을 생채로 만들어 봄의 미각을 돋구었다.

오신채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선 잎이 푸르고 대가 노랗고 뿌리가 희며 실뿌리가 검은 파를 붉은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오신채를 대신 하기도 했다. 파는 신진대사 촉진작용이 대단하여 겨우내 쌓였던 피로와 독소를 제거해 주고 인체에 활력을 주는 봄철 음식 중 하나이다.

파에는 칼슘, 염분, 비타민 등이 많이 들어 있고 특이한 향취가 있어서 생식하거나 요리에 널리 쓴다. 일반 채소가 알카리성인데 반해 파는 유황이 많은 산성식품이다.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 소화를 돕고 땀을 잘 나게 하여 감기에 죽을 끓여 먹으면 효력이 있고, 불면에는 파를 머리맡에 두고 자면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는 등 식용뿐만 아니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감기에 걸리면 잠자기 전에 파의 흰줄기를 끓여서 마시면 좋고, 생강을 섞어서 달여 마시면 감기로 인한 두통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기침이 심할 때는 파를 잘게 썰어서 헝겊에 싸서 콧구멍에 대고 숨을 쉬면 기침이 멎는다.

파는 보통 양념으로 많이 쓰기 때문에 파를 주재료로 하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파에 고기와 버섯 지단을 감아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는 파강회, 실파를 살짝 데쳐 무친 파무침과 코끝이 톡 쏘는 파김치의 매콤한 맛, 고기와 꼬지에 꿰어지진 파산적, 실파장국 정도이다.

조촐한 식탁에 갓 부쳐낸 파전 한 접시만으로 넉넉하다. 해물이라도 얹어 따끈따끈할 때 파의 줄기대로 죽죽 찢어 먹으면 파의 향기가 피로까지 싹 씻어준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별난 재료가 없어도 파전은 양념의 감초가 되듯이 세상사는 입맛도 감칠맛 나게 해줄 것이다.

김정숙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