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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실려오는 아까시꽃 향기에는 질펀한 뻐꾸기 울음이 묻어있다. 주렁주렁 하얀 나비떼들이 차례로 늘어선 것 같은 꽃송이들은 오월 숲을 더욱 싱그럽게 한다.

‘저러이 황홀한 향기로/ 꽃몸살 앓게 하던 사람/ 그대는 만난 적이 있는가/......... 이제 내게 다가오는 이 있으면 / 이런 향기로 안겠네’ 시인 오소후는 <아카시아꽃 필때>에서 아까시나무의 황홀한 향기를 노래하고 있다.

아카시잎을 보면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같은 수의 잎을 하나씩 떼어내던 유년의 기억으로 달려간다. 유백색 꽃을 따서 입에 “쭉 쭈욱” 빨면 입안에 남던 꿀샘의 들큰한 맛의 기억은 늘 감미롭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카시아로 부르지만 북아메리카 원산의 갈잎 큰키나무는 아카시나무로 불러야 옳다.

이 나무의 학명은 로비니아 수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로 로비니아속에 속하는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진짜 아까시아(Acasia)는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지역에 사는 나무로 대개 노란 꽃이 뭉쳐 핀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는 단 한 그루도 자라고 있지 않다.

아까시나무는 일제 시대 벌거벗은 민둥산을 긴급히 녹화하려고 심기 시작했는데 이제 전국의 온 산기슭을 거의 덮고 말았다. 우리는 좋은 나무를 다 베어내고 산에 ‘망할 나무’만 잔뜩 심었다는 부정적인 인상이 있는 나무이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우리 산을 푸르게 하는데 일조했고, 산지를 기름지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이는 유용성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제거해야 하는 나무라고 한다. 꽃과 향기가 좋은 아름다운 추억 속의 나무인가 하면, 산을 망치는 몹쓸나무라 천시 받는다. 사실 아카시나무는 묘역으로 침입하면 제일 골치 아픈 나무이다.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숲은 대개 잡풀이 적다. 워낙 왕성한 생장은 양분을 다른 식물이 나누어 쓰지 못하도록 일종의 독성을 내보낸다 한다. 흔히 식물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만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치열하게 진화시켜온 “식물의 생존지혜는 정말 경이롭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한다. 꽃의 아름다움만 보지말고 그 지혜까지 함께 보라고 .

아까시나무는 꽃향기 외에도 쓰임새가 많은 나무이다. 양봉업자에게는 최고의 꿀을 제공하는 나무로, 꿀 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리나라 아까시나무 숲은 좋은 수입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생태계의 교란을 염두에 두고 다른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 버려진 땅에 아까시나무를 제대로 심어 가꾼다면 무늬와 색상이 독특한 목재로도 유용한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잎은 가축의 사료나 좋은 녹비이며 뿌리의 껍질은 주로 약재로 이용한다. 봄 가을에 채취하여 살짝 찐 다음, 손으로 비비면서 말려 차로도 마신다. 풀냄새는 나지만 이뇨작용이 뛰어나 신장치료와 수종, 변비에 효과가 있다. 봄철 어린잎은 나물이나샐러드, 꽃과 어린잎을 섞어 튀김을 하면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아카시꽃튀김을 아는가? 모처럼 집에 내려온 딸에게 잊지 못할 향기를 먹이고 싶었다. 학교 뒷산에서 하얗게 널린 아카시꽃을 조심스럽게 따왔다. 물에 가볍게 흔들어 씻고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내니, 바삭한 튀김 속에 향기로움이 살아있다. 감성적인 딸은 환상적인 맛이라고 기뻐한다.

“엄마, <영혼과 영생>을 상징하는 아카시꽃을 먹었으니 우리는 향기로운 영혼으로 영생하겠죠?” 꽃튀김 한 접시에 호들갑스럽다고 누가 탓하면 대순가. 아름다운 봄날 모처럼 모녀가 앉아 푼수가 되어 보는 것도 즐겁다. 영원히 살기 위해 어떻게 죽어야하는 가를 가르치는 희랍의 성약(聖約)을 상징하는 꽃. 아카시꽃이 있는 오월은 눈부시다.

김정숙( 웰빙논설위원.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