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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5일
화순적벽과 관계되는 자료들 2편
◆김삿갓의 방랑 멈추게 한 적벽
◆기묘사화[己卯士禍]와 화순
입력시간 : 2015. 07.25. 00:00


●김삿갓의 방랑 멈추게 한 적벽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의 적벽이 화순 땅에도 있다.

옹성산(572m) 서쪽 기슭, 이서면 장학리, 보산리, 창랑리 일대 약 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지금은 이서적벽(노루목적벽ㆍ화순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으로 구분돼 불린다. 이름은 정말로 중국 양쯔강의 그 적벽에서 따왔다. 기묘사화 때 동복(현재 화순의 일부)에 유배된 최산두(1483~1536)가 웅장한 풍광에 반해 이렇게 이름 붙였단다.

중국 양쯔강의 적벽은 소동파의 애를 태웠다.

화순적벽은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적벽의 웅장함을 잊지 못한 그는 말년에 화순을 찾아 13년을 머물다 생을 마친다. 조선 중종 때의 개혁정치가 조광조(1482~1519)는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며 한을 달랬다.

적벽에 홀린 시인묵객들은 이외에도 허다하다. 일본 강점기 시대에 적벽은 ‘조선 10경(景)’에 드는 경승지로 이름 날렸다.

네 개의 적벽군 가운데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김삿갓이 수시로 올라 시를 읊었다는 정자가 물염정이다. 광주관광협회에서 호남 10대 정자 중 제1호로 지정 되었다.

물길 너머로 적벽이 보인다. 정자 앞 벚나무 아래서 볕 받으며 게으름 부려본다. 여기서 창랑적벽도 가깝다. 도로 따라 창랑리 방향으로 가면 물길 너머 적벽이 나온다.

적벽은 단연 이서적벽과 보산적벽이다.

높이가 최고 100m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는데 1970~80년대 동복댐이 생기면서 이 절반이 물에 잠겼단다. 그래도 맞닥뜨리면 입이 쩍 벌어진다. 동복호를 앞에 두고 수직으로 우뚝 솟은 기세가 정말 등등하다.

단풍 화려한 가을이 장관이라는데, 신록 어우러진 풍경도 제법 볼만하다. 붉은 때깔도 잘 드러난다. 망향정이 있는 곳이 보산적벽,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이 이서적벽이다. 망향정은 댐 생길 때 물에 잠긴 마을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다.

망향정이 들어앉은 위치도 절묘하다.

그런데 이서적벽과 보산적벽 일대는 광주광역시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설과 추석, 수몰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는 가을 무렵 한차례만 이들을 위해 개방된다.



◆기묘사화[己卯士禍]와 화순

화순 지역은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여파로 조광조(趙光祖)가 유배되어 오면서 유학 사상이 발전하고 유학자를 배출하는 등 큰 영향을 받았다.

화순 지역의 유학 발전에 직접 기여한 인물은 기묘사화로 동복 지역에 유배된 최산두(崔山斗)를 비롯하여 화순 지역 출신 양팽손(梁彭孫) 등을 들 수 있다.

최산두는 유배시절에 처음으로 화순적벽이라는 명칭을 붙여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최산두는 화순의 적벽이 중국의 적벽과 비슷해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조 때에는 기축옥사(己丑獄死)가 일어나면서 조대중(曺大中)을 비롯하여 화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당하기도 하였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14)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 사류(新進士類)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고 성균관을 중수하였으며, 두 차례의 사화로 희생된 사람들을 신원(伸寃)하고, 명망 있는 신진 사림파를 등용하였다.

중종의 지지를 얻은 조광조와 신진 사류들은, 성리학에 의거한 이상정치 실현을 목적으로 먼저 중종에게 철인군주주의(哲人君主主義) 이론을 가르치면서, 군자를 중용하고 소인(小人)을 멀리할 것을 역설하였다.

나라의 미풍양속을 기르기 위하여 미신타파와 향약(鄕約)실시를 강행하고, 유익한 서적을 국가에서 간행 ·반포하게 하였으며,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여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도록 하였다.

현량과는 성품, 기국, 재능, 학식, 행실과 행적, 지조, 생활 태도와 현실 대응 의식 등 7가지 항목을 종합하여 인재를 천거하고 그들을 궁궐 뜰에 모아 왕이 참석한 자리에서 대책(對策)으로 시험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별시로 치러졌다. 이를 통해 28명의 신진 사림들이 등용되었다.

그러나 뜻을 달리하는 문인의 사장(詞章)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고 오직 도학사상만을 강조하였고, 특히 훈구파를 소인으로 지목하여 철저히 배척하며, 현실을 무시하고 급진 정책을 시행하는 등 지나친 이상주의를 펼쳤다.

중종반정 공신 117명 가운데 76명은 뚜렷한 공로 없이 공훈을 남수(濫授)하였으니 이들을 공신에서 삭제하여 작위를 삭탈하고 그들의 전답과 노비 등도 모두 국가에 귀속해야 한다는 위훈삭제(僞勳削除)사건을 야기시켰다.

훈구파의 전횡에 시달린 백성들은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에 환영하였지만 중종은 임금의 권위마저 압박해오는 것으로 받아들여 조광조와 신진 사류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신진 사류와의 알력과 반목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정면 도전을 받은 훈구파는, 홍경주의 딸이 중종의 후궁인 것을 이용하여, 궁중 동산의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의 4자를 쓴 뒤, 이것을 벌레가 갉아먹어 글자 모양이 나타나자, 그 잎을 왕에게 보여 왕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走 ·肖’ 2자를 합치면 조(趙)자가 되기 때문에, 주초위왕은 곧 “조(趙)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었다. 남곤 ·심정(沈貞) ·홍경주 등 훈구파의 사주도 있었지만, 중종은 점차 신진 사류의 급진적 ·배타적인 태도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위훈삭제 사건이 중종반정을 반역사건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의심하게 되었고 중종은 결국 조광조와 신진사류를 몰아내었다.

조광조는 능주(綾州)로 귀양가서 한달만에 사사되고, 김정(金淨) ·기준 ·한충 ·김식 등은 귀양 갔다가 사형되었다. 김구 등 수십명도 역시 유배되고, 이들을 두둔한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등은 파직되었다.

사림파의 몰락으로 현량과는 폐지되었고 공신에서 삭탈된 훈구파들은 모두 복훈되어 빼앗겼던 재산을 모두 되찾았다. 후일 이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율곡 이이는 석담일기(石潭日記)에서 조광조가 성급했다고 비판하였다.

기묘사화 [己卯士禍] (두산백과)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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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죽 복원으로 화순 관광화 살린다. 찬성
주차난 때문에 복원 해서는 안된다.반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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