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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습니다.’

대통령을 파면한 까닭을 헌법재판소는 저렇게 판시했다. 중계하던 상당수 방송인도 벅찬 마음 중에 ‘어, 대한 국민이라 하네’ 하며 의아해했던 것 같다.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과 방송 등에서 ‘주권자인 ** 국민의 신임을’로 ‘대한’이란 말을 뺀 사례도 상당수다. 필자가 확인한 것이다. ‘대한 국민’이란 말이 그리 낯설거나 어색하였을까?

속보(續報)에서 한 통신사가 헌법 전문(前文)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이란 대목을 인용한 해설로 (슬그머니) 이런 어색함을 덮었다. 표현의 뉘앙스로 보아 그 대목에 대해 언론과 헌재 간의 의론(議論)이 있었던 것으로 읽힌다.

한국방송이 그 대목을 자막으로 쓰며 적극적으로 ‘대한국민’을 들고 나선 것을 필자는 주목했다. 허나 통신사나 방송의 기사도 저 ‘대한국민’의 핵심 되는 주제를 설명하지 않았다.

(권투를 즐기는) 스포츠팬들은 모를 수 없는 일화(逸話)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1977년 11월, 2회전에서 4번이나 다운됐던 홍수환이 3회전에서 카라스키아의 턱과 복부를 가격해 KO로 이겼다. 4전5기, 지금도 ‘신화(神話)’의 대명사다. 홍수환 모친의 ‘대한국민’이란 말이 얘깃거리가 됐다.

언론 등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기쁜 나머지 생각 없이 내지른 말’로 이해하(자)는 분위기였다. 이번 헌재의 판결, 엄정한 헌법 전문의 대한국민이란 말은 ‘챔피언 엄마’의 그 말 대한국민과 다른가? 언론 등은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듯 그냥 넘어가랴!

대한(大韓)은 사전에 나온 대로 대한민국의 준말이기에 앞서서 우리 겨레가 지어온 역사의 첫 시기 나라이름이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의 삼국시대 이전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삼한시대가 그것이다. 고조선(古朝鮮)의 다음 시기로 본다.

‘조선의 천재’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휘 둘러보고 쓴 열하일기(1780)의 한 대목, 중국 사대부가 연암에게 “요즘 삼한의 사정은 어떠한가?”라 묻는다. 중국서 조선시대의 우리를 ‘삼한’이라 지칭한 것이다.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였지만 우리 통칭(通稱)은 삼한(三韓)이었더라.

고종황제가 그 삼한을 大韓帝國(대한제국)의 깃발로 새로 세웠다. 사람이 두 팔을 양 옆으로 길게 벌린 그림(갑골문)인 ‘크다’는 문자 大는 ‘큰 사람’이면서 당연히 ‘큰 것’의 상징이다. 두 팔을 모아 충성을 다짐하는 그림의 사람 人(인)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나라이름 대한민국의 民國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도 공화국 또는 공화제(共和制)도 왜(倭)가 지들 개화(開化) 때 급히 받아들인 서양 문물, ‘데모크라시’와 ‘리퍼블릭’의 번역어인 것이다. 1900년경에 우리에게 처음 소개됐다.

민주공화국, 선거(투표)로 지도자를 뽑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체계(體系) 또는 제도지만, 그게 우리의 전부일까? 아직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크고 그윽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동학(東學)을 세상에 제대로 펴보지 않았다. ‘때’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칠전팔기(七顚八起)다.

그리하여 대한 국민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그 三韓이 大韓이다. 그 이유, 쌔고 쌨다.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 원장·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