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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는 충만한 둥글기와 적당한 밝기, 그리고 넉넉한 비춤의 보름달을 보았다. 보름달이라 했거니와 달은 달이로되 여느 달과는 다른 모양을 지녔고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굳이 ‘보름달’이라 했을 것이다.

그래 맞다. 우리는 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이름’이란 일종의 꼬리표를 달고 사는 운명을 지녔다.

태어나면 족보의 항렬에 맞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문의 전통과 타고난 사주팔자에 따라 이름을 얻고, 성인이 되면 자(字)를 얻어 이름과 자로써 자신을 대변하며 살아간 것이 전통적 삶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의지나 스승 또는 벗의 권유에 의해 호(號)나 아호를 가졌으며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왕으로부터 시호(諡號)를 하사 받아 그것으로 가문을 빛내는 영광으로 삼았다.

우리 사람들은 생로병사에 따라 각기 그에 합당한 그러면서도 고유한 이름이나 명칭을 가졌는 바, 아기·청년·어른·노인·망인 등이 가장 쉬운 예라 하겠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리에 변함 없이 유구한 시간을 의연하게 지키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 또는 그 은혜롭고 다정다감하며 섬세함에 대한 감탄과 칭송으로 자연물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퇴계 이황이 이름 붙인 충청도의 도담 삼봉 등 단양팔경과 고산 윤선도가 명명한 전남 완도 보길도의 혹약암, 휘황교 등이 그것이다.

또한 선비들은 고향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수려한 산수와 역사적 유물을 대상으로 여덟 개의 의경을 설정하는 이른바 팔경(八景)의 명명과 그에 따른 시문을 남기기도 하는 전통을 남겼다.

이러한 자연물에 대한 명명과 팔경의 설정 등은 그 이름 붙이기의 합리성과 대표성 나아가 그럴듯함에 의하여 여러 사람의 인정을 받았으며 그 결과 오랜 세월 동안 인구에 회자(膾炙)되었던 것임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그렇듯 이름 붙이기 곧 명명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최근 ‘광주 팔경’의 명명과 그 대상에 대하여 말이 많은 것은 충분하지 못한 검증과 열린 토론 등 합당한 절차를 거치지 못한 공감대 부족이란 이유 때문으로 이해된다.

추석을 넘겼으니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게 익어가고 구름은 사람의 마음도 비춰낼 듯 투명하기만 하다. 지난 여름 예년 같지 않게 뜨거웠던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렸던 베이징 올림픽의 메달 획득 장면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올림픽의 입장식 때부터 마지막 폐막식까지 끝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잡아 맨 것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조선족’ 이란 그 명칭이었다.

중국은 한족 외에 묘족, 백족 등 쉰다섯 종족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민족이 있는데 중국 측에서 부르는 이른바 ‘조선족’이 그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의 동북쪽에 거주하면서 조선어(한국어)를 사용하며 조선의 습속과 전통을 지닌 사람들, 이들을 조선족이라 부름으로써 그들 한족과 변별하였다.

하지만 중국인이 그렇게 부른다고 우리까지 덩달아 거기에 추임새를 얹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러한 명명은 현재의 국제 관례상으로 보든 우리의 유구한 역사적 의미로 따져 보든 간에 분명 합당치 못하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현재 ‘조선’이라 하면 북한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동북지방 곧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저 동포들의 선조가 누구였으며 왜 그 곳으로 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한마디로 그곳에 발 내린 사람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밀알의 하나요, 모태의 일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저들이 조선족이면 우리도 조선족이어야 할 터인데 과연 그게 옳은 것인가? 동북 3성에서 태어나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포들의 수는 적지 않다. 고국에 와 있는 그들의 선조는 다름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선조였는데 ‘조선족’이라 굳이 애써 한 데 사람 취급할 것인지…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