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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동시대를 살다간 인물로 원래는 같은 동인이었다가 정여립모반사건을 획책한 정철의 처벌기준을 놓고 남명학파(강경파)가 북인으로 퇴계학파(온건파)는 남인으로 갈리게 된다.

남명은 평생 한번도 출사하지 아니하였다. 임종을 앞두고 남명은 자신의 출처에 대한 판단의 엄격성과 출처문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였다. “내 평생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구차하게 복종하지 않은 것이다. 선비(士君子)의 큰 절개는 오직 출처 한 가지에 달려 있다.”

남명의 엄정한 출처관에 대해 퇴계는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義)가 없는 것이니, 장유(長幼)의 예를 폐지할 수 없는 것이어늘 군신의 의를 어떻게 폐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편지를 보내어 출사를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남명 또한 퇴계의 ‘학이우즉사(學以優則仕)’ 출사관에 대하여 “근래 군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출처가 의리에 맞는 자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비판하고 있다.

유학의 본지는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벼슬에 나아가 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일찍이 맹자는 공자가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남에 대하여 세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나아가는 경우(출사)이다.

첫째, 도를 행함이 가능한 벼슬이다. 군주가 맞이하기를 공경을 지극하게 하고 예의가 있게 하며, 장차 그 말씀을 행하겠다고 하면 나아간다.

둘째, 교제로서 가능한 벼슬이다. 즉, 군주가 그 말씀을 시행하지 않으나, 맞이하기를 공경을 다하고 예의가 있게 하면 교제가 가능하므로 나아간다.

셋째, 공양(供養)으로 가능한 벼슬이다. 즉 아침도 먹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하여 굶주려 문을 나갈 수 없는데, 군주가 이 말을 듣고 어진 이를 구원하여 주면 또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물러나는 경우(처사)이다.

첫째, 예의로써 대하는 태도가 쇠(衰)하지는 않았으나 그 말이 시행되지 않으면 떠난다.

둘째, 예의로써 대하는 태도가 쇠하면 떠난다.

셋째, 다만 죽음을 면하면 그만 두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받는 것도 제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군주가 진정으로 어진 이를 예의로써 대접한다면 요순의 실례처럼 능히 봉양하고 들어 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벼슬을 하는 것은 도를 행하기 위한 것이므로 도의 실현 여부로 나아가는 것이 예(禮)의 정도(正道)이지만, 때로는 가난을 면하기 위하여 벼슬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에는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처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처한 자는 반드시 도를 행하고자 해야 하는 것이다.

남명은 훌륭한 선비들이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그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화가 사림에까지 미치는 것을 늘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또한 그렇게 되는 데는 일의 기미를 밝게 보지 못하고 시대를 바로 살피지 못한 당사자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항상 제자들에게 출사할 때는 처사의 마음으로 나아가고, 뜻을 펴지 못하면 언제고 돌아와 처사로서 소임을 다할 것을 주문하였다.

민주개혁진영을 혹독하게 심판한 대선, 총선과 촛불민심은 우리에게 남명 조식의 엄정한 출처관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상집<참여자치21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