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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리난트 1세는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행해지게 하라 했다. 한데 ‘논어’ 자한(子罕)편에 ‘세한(歲寒 : 날씨가 추워짐)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 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소나무를 선비의 처신과 비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조선 말 동부승지를 역임했던 항일 문신 수당(手當) 이남규(李南珪·1855~1907)는 1907년 일본군이 도보로 연행하려하자 “선비를 죽일 수는 있지만 욕보일 수는 없다” 고 호통 치며 가마를 타고 나가 그 길로 살해당했다.

이남규는 ‘송포기(松圃記)’에서 “ 저 소나무는 홀로 우뚝 치솟아서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어지지는 않으며, 눈과 서리도 옮길 수 없고, 비와 바람도 흔들지 못한다. 사철을 꿰뚫고 천추의 세월에도 그 가지와 잎을 바꾸지 않는 것은 뜻한 바 (有心)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 날씨가 추어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 고 한 것이다” 고 썼다.

같은 충청도 예산 출신이지만 남인이었던 이남규와 달리 노론이었던 추사 김정희(金正喜)는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헌종 6년 (1840)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와 관련해 제주 대정현에 유배된다.

그러자 친구도 다 끊어졌는데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理想的)이 중국의 귀한 책을 자주 보내주자 고마운 마음에 그린 것이 ‘세한도(歲寒圖)’다. 그 발문에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해외의 초췌하고 마른 사람에게 보냈다’ 면서 역시 공자의 이 구절을 인용했다.

충신 성삼문의 시처럼 소나무는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 하지만 아무 환경에서나 사는 잡초 같은 나무가 아니다. 옮겨심기가 가장 어려운 나무로서 자신이 자란 토질과 다르거나 심지어 가지의 방향만 달라도 죽기가 일쑤다.

그렇게 까다롭지만 일단 정착하면 추운 겨울을 버티기에 선비들이 더욱 사랑한 것이다. 하지만 못된 선비들은 권력을 함부로 쓰고 기름진 고기나 탐했던지 육식자(肉食者)라는 말이 있다. 이들, 벼슬아치들은 지금의 지도층이나 식자층에 속한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에 먹물이 잘못 들어간 자는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도 온갖 까탈을 부렸다.

정작 고기를 바치는, 소나 돼지를 잡는 사람들의 애환은 살피지 않았다.

이 못된 식자층이라는 부류는 대개 가슴으로 살지 않고 꾀로 살았다.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을 뱉었다. 남의 상처는 무감각하지만 내 밥그릇에는 눈을 번들거렸다.

시공을 떠나왔지만 지금도 이 땅에서는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고 거품을 물고 뒤로는 저희끼리 잘 살아보자고 눈을 껌벅거린다. 말을 바꾸어, 과거를 지우며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권력에 기생하는 식자층은 대게 정교하게 음흉하고 뒤돌아 비겁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추락할 위험이 있는 곳에는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연고의 거미줄을 친다. 배웠다는 부류들의 집단 이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는 정의와 기회 균등을 외치지만 돌아서면 내 사람을 챙긴다. 밥그릇이 깨질 것 같으면 끼리끼리 뭉친다. 뭉쳐서 얻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나눠 갖는다.

그러한 작태가 들킬까봐 거품을 문다. 사실은 그러한 자신이 부끄러워 더 악을 쓰는지도 모른다. 낮에는 망국병을 타파해야 한다며 흥분하고 밤에는 ‘우리끼리 잘 살자’며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정치인들의 뒷모습이 이러한데, 이젠 말세인지 광주의 한 사이비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만 신경을 쓴다더니, 정치 목자까지 나타나 교회와 성도들보다 잿밥이 있는 정치판에 더 기웃거려 잡음이 일고 있다.

개도 똥개가 아니면 갈 길만 가고 집지키는 일에만 충실한데, 갈지자 행보인 한 목자 때문에 훌륭한 목자들까지 빛이 바랠까 걱정이다. 이남규의 ‘송포기’가 그립고 최근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립다.

고운석 <시인·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