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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대학의 기여 입학제를 두고 논란이 전개되어 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이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어 가부간에 사회적 공론화의 ‘의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기여 입학제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고도의 자본주의적 산물이며 발상이다. 돈은 있으되, 실력은 없는 이른바 부잣집 자녀들이 돈 좀 쓰고 대학 좀 들어가자는 것으로, 돈으로 반칙을 허용해 달라는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기여 입학제는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는 사회적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니 재론이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실력은 있으되 돈이 없어 학업을 계속할 수 없거나, 학업 중 고통을 겪는 인재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가가 학업에 드는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여, 가지고 있는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열악한 우리의 교육재정은 아직까지 의무교육마저도 일부는 학부모들의 호주머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재양성을 위한 재원을 전적으로 국가가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교육재정을 확충하는 한 방편으로서는 기여 입학제가 충분히 검토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기여 입학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세칭 서울소재 일류 사립대학들이며, 그들은 사실상 기여 입학제가 도입되지 않더라고 대학운영에 하등의 재정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 대학들이다.

따라서 정작 기여 입학제의 도입이 절실한 곳은 재정적 압박으로 교육환경 개선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지방 사립 대학들일텐데, 이들은 기여 입학제에 대해 하등의 발언이 없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기여 입학제가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지원자가 몰릴 곳은 서울 유명사립대학들일 것이 분명하지만,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아래와 같은 분명한 목적과 한계가 설정되어 운영된다면 그 효율성과 정당성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립대학의 경우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국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대학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하는 설립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전체 입학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도록 엄격한 한도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기여 입학제가 허용되는 대학에서 입학정원의 5% 이내로 정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숫자가 기여 입학으로 대학에 합류한다고 하여 정당성이 희석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여 입학에서 비롯된 수입은 전액 학생들의 장학금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기여 입학에서 나오는 수입금을 대학재정 전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자칫 대학경영자들의 또 다른 비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우선적으로 재정적 압박이 심한 지방사립대학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방사립대학들은 학생 수의 감소로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기여 입학제가 허용된다면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격한 제한 속에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기여 입학제가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의대 및 치대 등 인기학과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대학의 경우 이의 혜택을 받기란 쉽지 않을 것이어서 사실상 대학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의 능력이란 천차만별한 것이지만, 두뇌 또한 다양한 것이어서 일시 공부 잘하였다고 그 사람만이 능력 있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드는 예로 지금도 미국인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대통령인 존 F케네디도 대학 입학시 기여 입학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든 이미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기여 입학제를 더 이상 터부시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부의 재분배와 불필요한 해외유학을 줄이는 대안으로서라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오수열(논설위원. 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