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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진달래 등 온갖 꽃들이 춘신(春信)을 알리느라 시시때때 연방으로 축포를 터뜨린다. 꽃 피는 소리에 귀가 멍하고 꽃 핀 모습에 눈이 숨 가쁠 지경이다. 배부르게 봄을 느끼면서도 어딘지 모를 허전함과 쓸쓸함에 그만 고독이 밀려듦은 어인 일인가?

이런 마음 아마 왕소군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나 보다. 그래서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탄식했던 것이리라.

흉노 선우(單于)에게 강제로 시집갔던 한나라 원제의 후궁 왕소군, 왕에게 버려진 자신의 처지와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그것도 오랑캐의 가슴에 들어야할 운명이 되었으니 어찌 그녀에게 계절의 미감이 느껴졌을 것이며 화초의 자태가 눈에나 들었으랴! 절세의 미인 왕소군의 비극적 운명은 모연수라는 궁중 화가의 농단에서 비롯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후궁의 얼굴을 그려 왕에게 바치는 임무를 지닌 궁중화가 모연수, 그의 손길은 바로 후궁의 운명을 바꾸고 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이었다. 영향력이라고 했거니와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결정권이나 영향력을 지닌 사람의 생각이 매우 중요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순간의 잘못된 생각, 또는 단견은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뿐 아니라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큰 일, 가령 지도를 바꾸는 일이라든가,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는 일 등을 결정할 때는 심사숙고, 귀를 열고 마음의 중심을 다잡으며 눈앞의 이익과 사리사욕의 편견을 버려야할 것이다.

청년 실업의 창궐, 구직난의 심각, 서민 경제의 어려움 등 ‘화사한 고독’이 넘실대는 이 봄에 나는 봄이 왔건만 봄이 침묵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봄의 침묵: Silent Spring>이라는, 이 시대의 명저를 추천한다. 영향력 있고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광주는 2015 하계U대회 개최 유치, 무등산 관광 개발에 대하여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으며 구 도청 건물 철거를 두고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양 쪽 모두 맞는 말인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의와 진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리와 사욕이 넘실대고 있으니 아, 절세가인 왕소군을 흉노에게 내주고 후회했던 원제의 어리석음이 불현듯 떠오름은 어인 일일까?

과학과 기술, 그 것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것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현대인의 생활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줄 지 이제는 묻지 않아도 다 아는 한계, 극한에 이르렀다. 물론 카슨이 우려한 바와 같이 환경오염의 재앙은 ‘봄의 침묵’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경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침묵하는 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임은 그간 과학문명의 속성이 보여준 작태에서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이렇게 갈팡질팡 두서와 원칙이 없고 사리와 사욕이 판을 칠 때에는 건전하고 공평하며 미래지향적인 의견을 내놓을 줄 아는 주민의 깨어 있는 생각과 행동이 요구된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이 소중한 땅, 어머니, 당신들의 한 점 한 점으로 수놓은 이 아픈 땅을, 단견적이고 탐욕스런 모연수 같은 자에게, 아니 절세의 미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첨 배의 농단에 눈이 멀어 발등 치며 후회했던, 한나라 원제 같은 어리석고 제 배만 불리기에 급급했던 자에게, 어찌 그냥 맡겨두고만 있을 것인가?

봄이 왔건만 어쩜 이리 고독한지, 그래서 어느 시인은 ‘화사한 고독’이라며 봄의 허실, 캠퍼스의 아픔을 풍자했을까? 건강한 시민 정신, 옳은 일이라면 합심하여 뜨겁게 지지하고 성원해주어야 할 것이며 자발적이고 솔선수범으로 이웃의 손목을 잡아당겨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기꺼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남도, 마음은 언제나 넉넉하며 들판은 여느 때처럼 풍요를 기약하고 있다. 언제나 우리를 보듬어 안고 있는 저 무량한 산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 몇 년만 지나도 금방 아는 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눈가림은 삼가길 바란다. 찬란한 이 봄이 무색치 않도록….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