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내가 소년기를 보낸 60년대, 겨우 보릿고개를 넘긴 시절이지만 아직도 궁핍함이 땟국처럼 흐르던 시절, 나는 방안에 처박혀 책만 보았다. 만화건 무협지건, 누님들이 보았던 연애소설까지 저인망식으로 닥치대로 책을 읽었다.

소년기의 그러한 정서적 자양분이 오늘날 나의 심미안은 물론 인격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읽었던 책들의 영향이 컸을거라는데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은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할 정도로 독서열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디지털시대를 맞아 책보다는 인터넷과 비디오 등 재미있는 것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다.

그러나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양식이다. 거기에는 각종 전문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들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전문서적 외에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참되게 살 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주는 책,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책, 정서적으로 윤택함을 주는 책,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책 등 문화예술의 바른 정보를 주는 책 등은 마음의 양식으로서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많이 출판되어야 한다.

상업적 전략에 의해 생산되는 책은 공해일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전문가들에게 충분히 투자를 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때 책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책은 선인들의 지혜를 일러주고 인류의 미래를 예언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그런 독자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소수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은 생산해내는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발하게 저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실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지난주에 중국의 조선족 사회를 살펴보고 왔다. 소수민족으로서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전통과 언어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에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문화정책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수민족의 언어와 전통, 민속 등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 육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서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대원제국이 오래가지 못하고 산산이 분해된 역사적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점령지의 역사나 문화를 송두리째 부인하고 말살한 결과 결국 오래지 않아 점령지는 물론 자신들의 본거지까지 축소되어 역사에서 그들의 존재가 주목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화란 그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인 정신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화를 잘 지키고 발전시킨 민족만이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민족의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우수한 민족문화를 가진 나라만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의 문화·예술 정책은 어떤 실정인가· 정치, 행정의 뒷자리에서 푸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영화나 공연예술 입장권에 포함된 문예진흥기금마저 폐지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작년보다 올해에는 그 예산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정책이나 행정관료들의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문화예술진흥책이 직접 돈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까닭에 모든 정책의 뒷전에 밀린 것이다. 그러나 문화대국인 프랑스를 보자.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물론 자국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결과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강성대국으로 세계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이제 봄이 되어 많은 행사가 이어질 것이다. 문학·미술·음악·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한해를 결산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행사들인 것이다. 나라의 100년을 내다보며 보다 근본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 문화예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계간《시와사람》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