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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롯데화랑에서 ‘Survival kit’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갖는다. 초대작가는 고재근, 박수만, 박형규, 안 정, 윤남웅, 임남진, 전현숙, 조승기, 최 선, 최요안 등 10인이다.

Survival kit는 생존에 필요한 구호용품을 의미한다. 보통 조난에 대비한 약품. 식량 등을 담은 용기를 뜻한다. 본 전시는 현대사회 안에서의 미술인의 위치를 제고하는 전시로, Survival kit의 어휘적 의미를 차용, 미술인들이 생각하는 ‘생존’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리이다.

조각을 전공한 조승기 작가는 변기 모양의 합성수지에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의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부부의 한 해 소득이 채 백만원도 되지 않았던 때를 상기하며, ‘合, 100’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화되지 않는 악순환의 현실을 변기를 통해 반증하고자 했으며, 두 남녀의 몸짓에서 일상의 버거움 등이 드러난다. 탱화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임남진 작가는 책가도의 형식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일상들을 층층이 담았다.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들, 찻잔, 보시기에 담긴 매화, 그 뒤에 반쯤 감춰진 술병 등이 눈에 띤다.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했던 과거의 아픔은 반쯤 물러나고 창작인의 희망이 꽃피기를 기원하는 듯 하다.

희화화된 인물을 통해 사람 이야기를 담는 전현숙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중년남성을 표현한다. 중년남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하기 위해 불안하고 힘든 여정을 감내한다. 그 남성의 어깨 위에 자리한 여성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여전히 사회가 구분하는 남녀의 역할 위에서 여성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와의 대립에서 오는 불가항력에 대해 스스로 반문한다.

회화를 전공한 최선, 박수만, 그리고 조각을 전공한 박형규는 좀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묵비권이 필요하던 찰나’라는 제목의 최선의 작품은 미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대중에 조용한 시위를 한다.

예술과 창작하는 이에 대한 이해를 간과한 채, 창작의 난해함부터 꼬집으며 미술을 멀리하려 하는 일반에 항의한다. 문화에 대한 애정 없이 현상만 보는 사회에 묵비권을 행사하며,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박형규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 잘잘한 기계 부속품으로 구성된 오브제의 제목은 ‘끝없는 여행- 별’이다. 각양각색, 저마다의 감성과 사고들을 뒤로 한 채, 객관적인 이윤, 거대한 성과만 쫓는 현대사회의 경직된 성향은 성숙한 문화예술을 도모하는 데 여전히 장애로 작용한다.

박수만은 'P씨의 하루'라는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축구시합을 하는 듯한 인물들은 수선스럽게 그라운드를 메우고 있다. 하루하루가 먹먹한 창작인의 일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감상에 젖은 한가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생활과 창작의 틈새에서 객관과 주관을 쉼 없이 오가야하는 형국은 의미 그대로 숨가뿐 일이다.

'생존(生存)‘은 살아 있음과 동시에 살아남음이다. 예술가들에 있어 생존전략은 혹독한 경쟁과 그에 따른 이윤추구를 유도하는 현대미술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삶의 기재(器材)이다.

스타 작가 내지는 예술의 마케팅을 부르짖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예술가들은 시대의 전략가가 되어야한다. 외부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넘어서, 말초적이고 쾌락을 지향하는 개념을 예술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세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미술인들은 자아성찰을 기본으로 하는 진지한 창작 태도를 포기해버리기 일쑤이다. 미술의 향수계층도 작가의 창작물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인과관계를 고민하기보다는 그것의 투자가치에 더 열을 올린다. 위와 같은 특성은 문화의 경박함에서 비롯한다.

더욱이 작가들은 여전히 사회구성원 안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다. 작가들에게 있어 사회적 지위는 지위라고 명명하기에 매우 취약하다. 밭을 일구는 농부나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는 이들도 경험하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남들과 다른 의식구조를 갖고 있는 신비스럽지만 ‘이상한’ 지식인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이러한 환경에서 창작자들의 생존전략과 성공의 척도는 한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다. 자신의 창작물을 고급스러운 재화가치로 산출, 자본의 흐름 안에서 그 재화의 축적을 성공의 기준으로 보거나, TV나 여러 매체를 통해 연예인에 버금가는 스타성의 분출, 해외 유명 기관이나 메이저급 기획물에 무수하게 초대받는 정도의 가치 등, 달콤한 형태의 성공의 기준들이 산재한다.

물론 자신의 내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미련할 정도의 웅크림을 지속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무수하게 존재한다. 우리 동네의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지역 예술인들의 상황은 주지하다시피 더욱 열악하다.

취약한 생산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우느라 고심한다. 다양한 형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여러 미술인들을 보며, 그들의 생존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가난하고 사상누각(沙上樓閣)식의 사회구조 위에 불안하게 서있는 미술인들에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생존개념이 다양하게 그려지리라 기대된다.

더불어 사회 안에서 예술가들이 안고 가는 번민을 잠시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 대표작 정보

고재근 관조觀鳥에서 관조觀照를 보다 / 데큐파쥬 / 가변설치

박수만 P씨의 하루 / 캔버스 위에 유채 / 162×130cm

박형규 끝없는 여행 - 별 / 혼합재료 / 12×12cm, 3-4ea

안 정 조화(調和) / 혼합재료 / 가변크기

윤남웅 뻥 / 튀밥 외 혼합재료 / 가변설치

임남진 책가도(冊架圖) / 한지 채색 / 60× 117cm

전현숙 오빠만 믿어봐! / 캔버스 위애 아크릴 / 132×162.4cm

조승기 合 , 100 / 합성 수지에 채색 / 55×45×100cm

최 선 묵비권이 필요하던 찰라 / 혼합재료 / 46.5×48.5cm

최요안 흙에서 흙으로 / 관(棺) + 오브제, 미니어처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