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이다. 특히 어떤 공동체보다 사랑과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운영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집단이다. 거기에는 분명하고 자율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존경의 대상이며 삶의 지혜를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집안의 경제를 경영하며 위로는 어른들을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의 양육을 맡는다. 또한 자식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렇듯 우리가 뻔히 아는 가족에 대한 상식이지만, 세상에 이보다 더 질서있고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가족’이라는 제도에 주목하게 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중죄를 지은 살인마라 할지라도 어머니와 형제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경우를 우리는 언론 매체를 통해 종종 경험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제도는 근대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인류 역사상 가족이라는 제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보편적인 가족제도가 형성된 것은 서구의 경우 채 200년이 못 된다. 그것은 인본주의와 민본주의를 중시해 온 우리나라의 가족제도가 보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먼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탈근대와 후기산업사회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가족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갈수록 민주화와 선진사회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역설적으로 시민들을 법으로부터 일탈할 수 없도록 옥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올바른 시민이라면 꼬박꼬박 세금을 잘 내야하고, 카드 연체는 파탄과 죽음에 쉽게 이르게도 하고, 범죄는 틀림없이 법의 제제를 받아야 하고…… 하는 등의 수많은 제도적 장치로부터 받는 무게가 너무도 커, 빠져나갈 구멍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나는 죄를 짓고 도망갈 데가 없다고 한탄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또는 보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상처와 심리적 부담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삶을 포기해버리고 이른바 자살여행을 하는 가족이 어느 여관이나 길 위에서 고뇌에 찬 표정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아이엠에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주부, 그로 인한 가족간의 불화와 이혼, 어린 자식들을 시설에 맡기고 다른 지방으로 떠나 노동을 하는 힘없는 가장, 이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어린 자식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 근대로 형성된 서구식 가족제도의 가장 취약점으로 바로 자본 없이는 가족조차도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면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인내하며 살아왔다. 때로 제 허벅지 살을 떼어서라도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어린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을 기억해 낼 때, 우리는 오늘날 가족의 해체, 또는 가족의 붕괴 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시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모든 것이 서구식 자본주의의 근대로 덧칠해 있다. 아니 정신까지도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애 정신이 서구화되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대물림한 가난을 일소하기 위해 내건 196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기치로부터 시작된다. 물질적 성장을 국가 최대의 경영 목표로 삼은 그 시대에 유행되었던 유행어 중의 하나가 ‘무작정 상경’이었다. 전통적인 농경국가로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농삿일을 하던 가족의 해체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한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대가족제도의 해체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자본에 대한 탐심과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했던 공동체적 전통의 붕괴로 이어졌던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우리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물결이긴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식조차도 철저히 파괴하거나 내팽개친 과오까지 범했으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든 결과가 되었다.

이제 새로운 세기의 새해 벽두가 밝았다. 2004년의 아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해체의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가족이 건강하고 튼실해야 국가가 안녕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것이 자본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기도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새로운 올 한 해는 모든 가족이 소외보다는 관심을, 외면보다는 사랑을 통해 보다 밝고 화목한 가족이 되기를 힘쓰며 소망해야 하겠다.

강경호<시인·문학평론가·계간《시와사람》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