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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롯데화랑에서 미술 그룹을 초대, 기획전시를 갖는다. 초대된 그룹은 ‘www. 현대미술가회’로 2003년 결성된 여성미술인 그룹이다. ‘www(Worldwide Women Wave)'라는 영문 그룹명의 약칭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지향점을 다소 넓은 범위에서 설정하고 있다.

전시명은 ‘나의 안락한 소파 - 경계’ 로 주제의 문제제기는 사회화 과정, 그 한가운데 놓인 여성의 현재에서 출발한다. 좁게 보면 여성 미술가의 현재로 한정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왜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페미니즘 미술사 연구자들의 의문, 즉 부계적 미술사관에 제동을 걸며 그 중심에 서있던 쟁점은 사회적 관습이 성적 규범과 역할에 어떠한 형태로 영향을 끼쳤는가에 있다.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인 범위와 가정적인 범주로 규정한 것이 그 좋은 예이며, 이러한 흐름은 여성의 사회화 과정이 두드러지는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다. 달리 보면 위와 같은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된 새로운 것’에 불과하다.

여성이 사회화되는 과정, 그것의 경계는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의 공적 영역과 온전히 자아실현을 도모할 수 없는 사적 공간 사이에서의 범주이며, 경계의 기준은 사회적인 관습과 모성에 의해 구획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와 관련한 여성미술가들의 활동은 유형화된 여성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 한계를 지니며, 우리가 흔히 접해온 여류 작가, 여성 미술제, 여성 작가회 따위의 분류법은 여성의 활동 가치를 주변적 현상에 머무르게 하는 데 일조했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현대미술가회 또한 위의 한계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여성미술인으로서 세계미술의 흐름을 주도, 그 선봉에 서고자하는 그룹의 목표 설정이 의미 그대로 이 모임의 성격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지금까지 8회에 거쳐 다양한 주제전을 열며 사회 문화의 온전한 주체로서의 여성을 기대해 온 그들의 시도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성이 아닌 사회 안에서의 여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논하고자 했던 그간의 시도들이, 전시구성원의 경험적 차원에서 논해지기보다는 부계 중심적 가치관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 외 부수적인 논점들만 건드렸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전시의 주제는 이 쟁점과 유관하며, 경험의 차원에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에 가깝다.

주제에서 인용한 소파는 지금까지 언급해 온 영역 안의 경계를 설명하는 대용물이며, 이는 앉음(공적인 활동)과 누음(가정의 범주)의 경계를 상징한다. 사회 제도적 모순의 경계를 '소파'라는 상징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과, 더불어 그 사회적 여건을 여성미술가들이 어떠한 형태로 받아들이며 수용하고 있는 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창하고 위대해 보이는 문제의 외침이 아닌 현재의 모습을 담담히 성찰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류현자의 작품 「사모곡 - 경계」에서는 도자 재질의 버선들이 매달려있다. 버려진 한지를 모아 반죽하고 이를 화판에 눌러 작업하던 종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산청토와 청자토, 백토를 색색의 버선 모양으로 빚은 후 가마에 소성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주제는 모성에 관한 것이다. 여성의 가정 내 영역에서의 존재가치를 좀 더 성스러운 역할로 치환할 수 있었던 실마리는 모성에 있다. 사회가 숭고해마지 않는 모성 개념이 정작 여성들, 가깝게 우리들 어머니들에게도 동일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름다운 선과 색을 지녔지만 쉽게 벗고 신을 수 없었던 버선은 작가가 내세우는 우리네 어머니들에 대한 연민인 듯 하다. 정예금은 「나의 안락한 소파 - 해먹Ⅰ, Ⅱ」라는 제목으로 입체작품을 선보인다. 면과 면실로 이루어진 해먹은 비스듬한 각도로 그 그물을 형성하고 있으며, ‘안락한’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기계적이고 불안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흔히들 규정하는 안정, 혹은 편암함의 의미 그 이면에는 자기실현을 꾀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와 갈등요소가 잔존해 있다고 역설한다.

조수경의 작품 「母」에서는 나이프로 오려 드로잉한 일그러진 여체가 눈에 띤다. 부드럽고 유연한 여체가 아닌 진한 칼맛이 느껴지는 여성의 몸이다. 류현자 작가의 이야기와 그 궤를 같이하지만, 표현성이 짙은 흑백의 화면에서는 작가의 직접적인 감성이 돋보인다. 김왕주의 「여왕의 휴식」과 채경남의 「소파 위의 고양이」는 소파를 직접적인 소재로 등장시킨다. 채경남 작가가 거친 질감 위에 드러낸 고양이는 그 근본적인 성질이 야생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흔히 애완용으로 사육되는 고양이는 본래적 습성은 배제된 채 길들여지는 존재이다. 작가는 오래된 관습에 의해 길들여진 여성의 현재를 언급하는 수단으로 고양이를 택했다. 김왕주의 설치작품은 일인용 소파 위에 왕관을 쓴 반라의 여성이 보라색의 천 위에 드러나 있다.

화려한 왕관을 쓰고 뒷모습을 취하고 있는 인물이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형상은 아니다. 무겁고 다소 부자연스러운 왕관은 작가가 지향하는 이상과 꿈을 나타내지만, 벌거벗은 몸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기까지의 고단한 여정 또한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이상이 좌절되는 순간 안으로 도피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그만의 불안감이 보라색의 몽환적인 색채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특별히 흥미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전시 구성원 10명 중 9명은 기혼자다. 배우자의 전폭적인 원조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이들도 있고, 묵묵히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다른 조건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은 비슷한 범주에서 맴돌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이겨내거나, 혹은 사회적 영역과 관습의 범위를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지속하는 자세를 당당하다 치켜세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고는 이미 스스로의 영역에 한계를 설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협소하게 느껴지는 범위 설정이 때로는 근원적인 문제제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실천적인 관점에서 여성, 여성미술가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장으로 역할 하기를 바라며, 같은 위치에 자리한 미술인들의 고민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참여작가 (총 10명)

김왕주, 류현자, 박미정, 박수옥, 임수영, 정예금, 조미영, 조수경, 채경남, 한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