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몇 년 전 필자는 가까운 친구들과 중국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난다. 당시 현지 가이드가 우리나라 말을 너무도 유창하게 잘 하기에 깜짝 놀라 국적과 출생신분을 물었다. 그는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 3세라고 소개하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조선족의 교육기조를 물으니, 가이드가 매우 짧게 답하기를 민족의식 교육이라 말하면서, 모국어와 역사과목이 필수과목 중에서도 가장 단위 수가 높은 교과라고 대답했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건강한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역사의식이란 자신이 역사적 존재임을 인식하고, 역사의 의미와 과거로부터 미래의 비전을 창조할 수 있는 사고(思考)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 뿌리에서부터 시작된 수천 년의 역사가 내 육신과 내 정신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수천 년의 과거와 연결되고, 또한 수천 년의 미래와도 연결된다고 믿는다.

한 인간이 태어날 때 어느 나라의 국적을 선택하여 태어난 것은 아니다. 출생을 하여 눈을 떠 보니 한국인이 되고 미국인이 되기도 할 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 나라의 국적을 갖는 것은 숙명이 아닌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사무적이고 행정적인 국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의 역사 속에 융합되는 의식을 갖고 그 민족임의 자부심을 느끼고 발휘할 때야 비로소 진정한 국적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개인의 혼은 민족의 혼에 뿌리를 두고, 개인의 의식은 집단의식에 뿌리가 있다면,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민족의식의 결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논지로 해석해 볼 때 조선족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교육의 방향은 어떤 궤도를 돌고 있을까? 부끄러울 만큼 추상적이고, 주객(主客)이 전도된 교육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식의 부재는 역사교육의 부재이며, 민족의식의 부재는 교육 전반의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지도자의 의식이 민족의식의 결핍으로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패가망신하는 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충격적인 실망을 갖기도 하지만, 교육에서의 의식교육이 불성실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장구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오늘날까지 시련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이 민족의 역사와 민족정신의 문화이며, 그 다음이 그러한 바탕위에서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국제인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교육에는 순서와 균형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식으로 스스로 민족의 주체임을 망각한 체 외래의 사상과 문화만을 주입한다면, 외래문화의 소화는 물론 민족의식은 깨져버린 유리공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역사 교육을 통해 창조의 힘과 애국(愛國)과 애민(愛民)의 정신이 키워진다고 본다. 사실의 기록을 알고, 전쟁의 발발 시기나 왕들의 치적을 공부하는 것은 역사 공부의 본질이 아니다. 적어도 학생들에게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심어주어 꿈과 희망을 갖게 하고, 스스로가 민족 속에 주체가 되는 의식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족의 교육철학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민족사를 교육의 기조를 삼고 있다는 것은, 분명 그들은 민족의식이 살아 있다는 실증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신세대들의 의식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바라옵건데 외래의 사상이나 문화보다는 민족의식의 승화를 꿈꾸어가는 의식을 갖기 기대한다.

서길웅<서강정보전문학교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