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달랑 한 장 걸려있는 달력에서 금년도 사흘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맘때 쯤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의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성탄절을 맞아 교황을 비롯한 종교계 지도자들의 말씀이 ‘평화’와 함께 ‘나눔’의 의미를 강조한 데에서 금년도 우리네 살림이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나누며 살아가는 데 인색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시내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의 낮은 수치와 채워지지 않는 ‘구세군 냄비’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 기부행위가 줄어들 때, 어려운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정부의 적극적 활동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데 앞장 서야할 국회가 회기의 대부분을 여야간 대립으로 인해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기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다음해의 예산안을 심의하는 것이라고 할 때,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려운 서민들에게 국회의 허송세월은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실, 근대민주정치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정당정치(政黨政治)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당정치가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곧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수단과 목적이 혼동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위하는 일이 그들의 본분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정당에 대한 의무감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이 점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지금과 같은 국회의 장기 공전(空轉)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준예산’이 거론되고 국회의장의 사퇴가 운운되는 사태는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부의 굳은 의지와 홍보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4대강 사업을 대운하사업으로 연계할 의도가 없다면, 그것을 예산에 반영하면 될 것이다.

첫째, 정부, 여당은 4대강사업 관련 예산을 다소 감축하고 사업의 시행 진도를 늦춤으로써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고 정부의 진정성을 제고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정부, 여당은 이처럼 그들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없이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야당은 4대강 사업이 국가살림의 총체적 표현인 예산보다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나라 곳곳에는 적지 않는 숫자의 어려운 국민들이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현재와 같은 허송세월 끝에 예산안의 졸속, 심의가 이루어진다면, 그리하여 복지부분 예산이 대폭 삭감이라도 된다면 야당은 그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 속에 그 성공의 열쇠가 숨어있다. 그리고 밑바탕에는 항상 국민의 지지도(支持度) 즉, 여론이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국민의 지지가 있지 않고서는 추진하기가 쉽지 않고, 다당제 하에서 어느 일당의 지나친 독주는 곧 독재화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랑 사흘밖에 남아있지 않는 달력을 바라보면서, 아직까지도 의사당을 점거?농성중인 야당과, 할 테면 해보란 듯이 고집을 피우고 있는 정부,여당의 모습 속에서 우리네 민주주의는 언제쯤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