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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길이 대세다. 제주도 올레길을 비롯, 지리산과 무등산 옛길 등 각 지자체마다 무슨 유행처럼 옛길을 만드는데 열을 내고 있다. 길이 있어 걷는 자가 사람인가, 아니면 길을 내며 걷는 자가 사람인가?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길이 보이고, 미워하면 증오의 길이 생긴다고 한다. 어쨌든 길은 사람과 관련이 깊은 것임이 분명하다.

길하면 우선 우리를 키우고 길러낸 골목길이 떠오른다. 작고 좁게만 느껴졌던 고향 마을 골목길이 언제부턴가 너무나 넓고 크게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다. 우선 골목길을 누비고 뛰어다닐 사람 곧 아이들이 없다. 골목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 사람이 없으니 자연 골목은 조용하고 휑할 수밖에….

이제 곧 설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숨막히는 도심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거나 국도에 몸을 실어 고향 마을 골목길로 귀향할 것이다. 추석과 함께 일 년에 두 번 골목길이 대목을 맞아 적막을 깨고 본래의 모습을 찾는 날이다. 골목길은 동네의 작은 길이었지만 우리는 그 길을 통하여 여러 길을 배웠다.

굽어 돌아간 골목길에서 곡선의 미학을 배웠고, 나지막이 누워있는 골목길 너머로 이웃과 통하는 소통의 미학도 몸에 익혔다.

그뿐이 아니다. 샘물의 근원처럼 작은 골목길은 길고 커다란 삶의 다양한 길을 내는 모태가 되었다. 골목길에 대한 추억과 의미는 우리뿐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골목길을 호동(胡同)이라고 하는데 북경만 해도 이름 있는 곳이 약 사천여 개에 달하며 보통인 것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호동 안의 사람들은 사합원(四合院)이라고 부르는 전통 가옥에서 살았다. 사합원은 가운데 미음자 모양의 정원이 있는 집을 일컫는다.

그런데 지금은 사합원과 호동이 많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도심을 정비하느라 전통 가옥을 허물어 버린 탓이다. 우리가 88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전통 가옥을 마구 부숴버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큰 강물의 원천이 아주 작은 샘물인 것은 모르지 않으면서, 큰 길, 대로(大路)의 뿌리가 골목길임을 망각한 두 나라의 개발 정책이 아쉽기 짝이 없다. 중국은 설날을 춘절(春節)이라고 하는데 이때는 약 한 달여에 거쳐 수억 명의 인구가 대이동을 한다. 이른바 고향의 골목길로 회귀 아닌 회귀를 하여 그간 도심에서 잃었던 고향의 에너지를 충전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네 풍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발의 미명에 사라져버린 골목길, 그런 천덕꾸러기가 이제 와서 옛길 운운하면서 골목길에 열을 내고 있다니 우습기도 하지만 내심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왜 그럴까? 온고지신(溫故知新) 같은 거창한 미사여구가 아니더라도 골목길을 통하여 마음으로 내는 길을 배우고, 다시 그로부터 화합의 길, 평화의 길을 내어 세계 유일의 동강난 나라가 이어지고, 끊어진 정이 솔솔 흐르는 그런 날이 머지않을 것 같아서 그럴까?

어쨌든 길은 길로 이어져 언젠가는 다 이어질 것이니 우리 희망을 가져봄직 하잖는가?

예전의 골목길처럼 고속도로와 국도가 막히고 비행로와 항해로가 막히더라도 결국 길은 길로 통하는 것임을 생각하면서, 그래 겨울 있어 봄이 오듯, 막히면 뚫린다는 소통의 미학이 너와 나에서 우리로, 다시 남북으로 이어져 이산의 가족이 서로 만나 고향 마을 골목길을 거닐 수 있을 날 기대해보자.

그래 남북의 골목길이, 길로 이어져 우리 민족이 세계에 우뚝설 큰 길 열릴 수 있기를 손모아 기도해 본다.

최한선<전남도립대학 교수·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