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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꾸준하게 북한을 지원해 오고 있는 민간단체가 있다. 바로 189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고인이 되어 우리나라 땅에 묻힌 유진벨 선교사의 이름을 딴 유진벨 재단(이하 유진벨)이 그곳이다.

유진벨은 1995년 미국에서 ‘유진벨 100주년 기념 재단’으로 설립돼 북한에 콩·옥수수 등 식량지원을 하던 중 북한 측의 요청을 받아 1997년부터는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의 산하기관으로 북한에서 결핵퇴치 프로젝트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부터 유진벨은 우리나라에 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북한 내 결핵 퇴치 지원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북한 80여 개 결핵 요양소 및 인민병원 결핵과에 결핵 퇴치를 위한 지원을 해오며 현재는 평안남북도, 평양시, 남포시에 있는 병원과 요양소 45곳을 대상으로 결핵 퇴치 패키지 및 일반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

유진벨 대표단은 올 상반기 북한 방문(5월 10일~21일) 때 보건성이 마련한 유진벨의 북한 지원 1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에 초대됐다. ‘예상치 못했던’ 이 만찬에서 북한 보건성 최창식 부상은 유진벨 재단의 결핵 퇴치와 의료지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최 부상은 이때 “북한 내 등록된 결핵환자 수가 더 이상 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언젠가는 북한에서 결핵이 줄어드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희망을 담은 말을 전했다고 한다. 민간단체로 10년간 대북 지원을 한 역사를 지닌 유진벨의 황지혜 사무국장을 만나 유진벨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유진벨은 지난 10년간 1년에 두 차례씩 매년 봄과 가을에 북한에 대표단을 보내고 있다. 대표단은 2~3주 일정으로 북한의 45개 병원과 요양소를 방문해 지원물품이 잘 도착했는지, 잘 사용되고 있는지, 추가로 필요한 품목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돌아온다.

유진벨의 결핵 패키지 프로그램이 시작된 해는 2000년도. 처음에는 결핵약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유진벨 측은 대표단이 직접 요양소 등을 방문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핵약은 물론, 진단장비(X선 촬영기계, 현미경) 일체와 농업 자립 키트를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유진벨의 농업 자립 키트에는 종자와 비료부터 경운기, 양수기, 살균 살충제 등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본 물품들이 포함돼 있다.

이는 결핵환자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직접 재배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핵이란 병은 진단, 치료, 기본적인 영양보충까지 해주지 않으면 낫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 패키지 프로그램이 다른 구호기구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철저한 사후관리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지원물품이 6개월에 한 번씩 들어가면 봄, 가을로 나눠 해당 요양소와 병원을 1년에 한 번씩 방문해 지원한 장비들이 잘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거나 고장 난 부품들을 다음 번 방문 때 다시 지원해 주는 것이다.

유진벨은 처음에 북한 전 지역 요양소에 지원을 했지만, 북한 당국에서 일부 지역의 방문을 허락해주지 않아서 현재는 평안남북도, 평양시, 남포시 4개 지역의 병원, 요양소 등 45곳을 위주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방문이 금지된 지역에는 물품지원을 해주더라도 사후관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과 후원자 사이에 중간다리를 놓는 자칭 ‘택배회사’

이런 후속관리 말고도 유진벨의 대북 지원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모든 지원물품을 직접 현장에 전달하고 그 물품을 지원한 사람의 실명을 공개하는 투명성이다. 또 한 명의 후원자가 일정한 요양소나 병원을 1대 1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일종의 자매결연 형식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의 원칙은 우선 최대한 북한의 입장에서 지원한다는 점이다. 즉, 북한을 존중하고 북한에 꼭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유진벨의 스티븐 린튼 이사장은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이며 자존심도 무척 세기 때문에 대북지원을 할 때는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자주 강조한다.

대북지원사업을 하기 전부터 북한 관련 자문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북한에 은혜를 베푼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지원활동을 하거나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찍은 사진을 공개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 스스로 유진벨을 택배회사나 당나귀 재단으로 일컫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지원물품을 전달할 때 린튼 이사장은 북한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것은 우리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간 다리로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남쪽 사람들의 사랑으로 생각해 주세요. 한 가족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래검사 의뢰서부터 발전기까지, 세심한 지원

유진벨이 지원하는 물품을 보면 북한의 현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결핵환자 키트에는 수술 장비 일체에 환자복은 물론 침대보와 의사 왕진용 자전거까지 포함돼 있다. 가래검사 의뢰서와 실험실 등록대장, 트럭 고장수리 기록표, 경운기·발전기 관련 기록표까지 있을 정도다.

올해 응급용으로 지원된 구급차는 아직 비포장도로가 많은 북한의 실정을 고려해 바닥을 높인 후 전달했다. 또한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발전기는 필수적인 지원품목에 해당된다.

황 사무국장에 따르면 매년 방문할 때마다 담당자들이 기록해 둔 것을 회수하고 답변해주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상태라고 한다. 지금에야 북한 당국과 병원 담당자들과 신뢰를 구축한 상태이지만 초기 지원활동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 지원은 쉽지가 않습니다. 좋은 마음만 가지고 가더라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때는 방문지역을 공개하지 않거나 초청 날짜를 늦추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북한을 방문하는 유진벨 대표단 중에 한국 국적인 사람은 없다. 또 유진벨은 미국 재단으로서 북한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 사무국장은 원래 미국 재단으로 설립되어 식량지원을 시작했었던 이유도 있지만, 한국단체와 달리 외국 단체는 방문지역에 대한 제약이 적고 외교부를 통해 들어갈 수 있어 활동을 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북한 보건의료의 기반을 다지는 게 목표

올해 상반기 유진벨은 북한 인민병원의 일반 의료지원에 대한 공식 요청을 받고 병원 세 곳에 먼저 1억 5000만 원 상당의 의료 패키지를 보낸 상태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응급진단 장비와 응급수술 장비가 포함돼 있다. 내년부터는 모자보건, 산부인과에 필요한 패키지를 보내 의료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유진벨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의 60~70년대 이후부터 당국의 지원이 끊겨 거의 자급자족하다시피 해야 하는 북한 병원의 기본적인 의료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병원 하나를 지어주는 것보다 북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북한의 병원에는 의료진은 갖춰져 있는 상태이므로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황 사무국장의 말이다. 북한 의료진들에게 기술교육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지침서 형식으로 장비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보내면 각 담당자들은 수십 번씩 지침서를 들여다보고 익혀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향후 유진벨은 평안남북도, 평양시, 남포시의 300여개 인민병원에 기본적인 의료장비 지원해 줄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꾸준히 들어오는 후원금말고도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민간단체로서의 지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북지원은 후대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

황 사무국장은 당장 북한을 지원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언제가 통일이 되거나 혹 안 되더라도 북한과 교류할 날이 오면 북한의 문제를 떠맡을 사람은 어차피 우리라고 말한다. 즉 북한 지원은 “후대에게 넘겨줄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천 원으로 될 것에도 나중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북한의 실정에 맞게 지금부터 조금씩 지원하는 게 중요합니다. 통일세대가 될 가능성이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끔 북한을 왜 돕느냐, 지원물품이 북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느냐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황 사무국장은 일단 전달된 지원물품은 북한 당국에서 압수해 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 “만약 열 개를 지원해서 세 개가 빠져나간다고 해도 일곱 개는 남는다. 그 세 개가 아까워서 지원하지 않는다면 일곱 개가 희생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대북 지원 문제를 좀 더 넓고 깊게 생각해 달라고 한다. 이어 “유진벨이 필요하지 않을 날이 온다면 언제든지 문을 닫을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