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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변신했다.

아침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웬만한 책임감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다. 기상 시간은 4시 반, 청취자들과의 약속이 걸린 일이라 하루도 기상 시간을 늦출 수 없고 마음 놓고 저녁 약속을 할 수도 없다. 한 마디로 강한 프로정신과 책임감이 바탕하지 않으면 금세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침 시사 프로그램 진행인 것.

방송을 맡은 후, 그는 하루 5시간 이상을 방송에 투자하고 있다. 얻은 것은 청취자들과의 교감과 일취월장한 방송 진행 능력이요, 잃은 것은 건강이었다. 토요일 오후 신촌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잠을 못자는 생활을 하니 몸에 말썽이 났다”며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프닝과 클로징을 쓰고 그날의 이슈를 찾기 위해 신문과 인터넷을 뒤지며 작가, 피디 등 스탭들과 회의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간다. 거기에 밀려드는 강연에다 칼럼 기고까지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고 만다고.

방송 강연이나 패널로는 종횡무진 활약해 온 그이지만 2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을 장악해야 하는 호스트 역할은 생면부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워낙 말과 글에 천재적인 기질이 있는 그이기에 한달 남짓한 사이 어렵지 않게 방송 시스템에 적응한 눈치다.

“시간 신경써야지, 모니터로 오는 주문 사항 챙겨야지, 제가 질문 해 놓고도 답변이 잘 들리지가 않더라고요. 방송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이제야 좀 들리는 것 같아요.”

논객으로서 정파성을 갖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진씨를 두고 ‘대안없는 비판에만 몰두한다’, ‘지지자들과 자신이 속한 진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기자가 아는 진씨는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한 번도 ‘논객으로서 정파성을 갖지 않는다’, ‘생산적 패러다임이 아닌 생태문화적 패러다임을 일깨운다’는 논객으로서의 역할과 원칙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방송인으로 변신한 그는 전보다 더욱 정제된 언어를 쓸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발언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독설이 무뎌진 것은 아니다.

대통령 학력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서는 ‘대변인은 입으로 대변보는 사람이 아니다’며 일갈했고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는 ‘70년대식 개발독재의 천박한 리더십’이라고 공격했다. 유시민 의원에게는 ‘더 이상 좌파라고 주장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물론 자신이 한 때 몸담았던 민주노동당도 그의 저격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전방위 독설가로서 그의 자리는 아직도 확고하다.

“말 자체에만 주목하는 언론들 안타까워”

“특정정치인 공격 무의미, 개발주의 경도된 사람들의 마인드가 문제”

언론들은 그의 말 한 마디에 기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한 진보 매체는 그가 ‘노무현, 불쌍하다’고 한 발언을 보도했고, 보수 매체들은 ‘유시민 안타깝다’는 그의 말을 인용한다. 정파적 이해 관계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행태들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그는 ‘그야말로 안타깝다’고 답했다.

“모든 게 다 제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 것들인데 언론을 보면 대단한 것인 양 대서특필을 하거나 말꼬리를 잡아서 제목을 뽑더라고요. 제가 비판하는 지점은 본질적인 것이에요. 예컨대 이명박의 리더십이 천박하다고 비판한 것은 이명박이라는 특정인이 천박하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청계천 개발 방향을 보면 완전히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놓았잖아요. 처음 복원 사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왜 지금 청계천을 꼴도 보기 싫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개발하고, 고도 제한 풀어 투기하도록 하는 이런 방식들에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저의 ‘천박하다는’ 공격은 바로 불도저식 개발주의에 경도된 우리들의 ‘마인드’를 향한 것이지요.”

‘일하는 사람 도와주기는커녕 딴지만 건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는 “내가 지적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벗어난 비판”이라며 “나는 개발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나더러‘그럼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특정 매체 배제는 중요하지 않아, ‘안티조선’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일 뿐”

진보논객 진중권은 당초 ‘안티조선’의 전사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결국에는 안티조선 운동의 순수성과 정파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안티조선 진영과 결별을 했지만, 그는 늘 언론의 정파성과 자본에 대한 종속을 올곧게 지적해 온 논객이다.

그런 그가 다른 방송사도 아닌 상업방송 SBS에서 마이크를 잡는다고 했을 때, 기자는 적지 않게 놀랐다. SBS 역시 족벌 체제에 대한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는데다가 공중파 방송 가운데는 다소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SBS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안티조선진영의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던 것이나, ‘반 걸음 앞선 진보’를 표방하며 진중권을 영입한 것을 두고, 진보 진영의 비판을 면피하기 위한 눈속임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그는 너무나도 ‘쿨’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 해엔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했다가 ‘배신했다’는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 글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비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나도 왜 SBS가 날 원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SBS라는 특정 매체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저는 그런 지적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사실 방송사에서 저희 프로그램 방향에 대해 어떤 간섭도 하지 않거든요. 우리 방송에 조선일보 기자도 패널로 출연하는데, 그 기자가 데스크와의 관계 속에서 잘못된 기사를 쓰는 것 가지고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 특정 매체 출신이기 때문에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은 아니에요.”

“편 가르기로 단정짓는 것은 구술 문화의 전통”

“인터넷 문화, 차가운 냉소와 합리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요즘 보수 신문들은 ‘편가르기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에서는 편가르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반대편에게 용공이니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딱지를 붙였던 기득권 세력 아니냐고 반문을 하고 있고요.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도 우리 사회가 진보로 가느냐 보수로 회귀하느냐의 논쟁을 멈추지 않고 있는 듯 한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이 시점에서 진보와 수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논리로 따지지 않고 무조건 편가르기에 급급한 것은 구술문화의 영향”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실 ‘두 걸음 앞선 진보’를 지향하면서 진보 진영 내부에도 아픈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이기에 ‘이 쪽이냐 저 쪽 이냐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시비에 여러 차례 시달려왔던 전력이 있기도 하다.

“우리 나라는 문자 문화가 시작된지 사실상 50년 정도밖에 안됐어요. 사람들이 아직도 논리적이지가 않아요. 감성적이고 정서적이죠. 논리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어느 편인지로 구분하는게 훨씬 빠르고 쉽거든요. 인터넷 자체도 구술 문화적이에요. 인터넷 글은 사실 말에 가깝지 글이 아닌거죠. 인터넷 시대를 맞아 구술 문화가 활자문화인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저는 이 현상을 ‘2차 구술문화’로 봅니다. 차가운 냉소와 합리적인 논쟁, 이걸 바탕에 깔아야 인터넷 문화가 제대로 될 거에요.”

“진정한 진보는 우리 안의 수구성을 타파하는 것”

그는 “수구라는 말도 진보라는 말도 모두 정치적 수사로만 쓰이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수구 진영, 진보 진영이 아니라 각 진영 내에 있는 수구성을 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쓰이는 ‘수구’라는 말이 정치학적 의미로만 쓰이고 있어요. 정치적인 수구는 지만원, 한승조 같은 부류들이죠. 그런데 이미 그런 사람들은 소수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심지어 한나라당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를들어 정형근씨가 대북비료를 조건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한 것이나 김용갑씨가 민노당 조승수 의원 처벌은 사실 검찰에서 무리하게 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들은 ‘쿨한 짓’이죠.

지금 다 그렇게 가고 있거든요. 오히려 열린우리당 유시민씨가 정동영 장관한테 ‘북한에 주기만 하고 뭐 얻어왔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완전 뒤바뀐 상황인 거죠.”

그는 “인터넷 활용도에 있어서도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참여도는 활발한 반면 민노당 지지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제는 다른 의미의 수구성을 따져봐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정치학적 수구는 이제 10%. 많아야 20%가 안 될 거에요. 수구 진영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변신하려고 하고.

이제는 다른 의미의 수구성을 따져봐야 할 때에요. 한나라당의 수구성, 열린우리당의 수구성, 한편으로는 민노당도 수구성이 있거든요. 저는 그걸 깨나가는 게 진보라고 생각해요. 꼭 민노당만 , 특정 진영만 진보가 아니라는 거죠.”

그는 언론들도 자신이 주장하는 ‘진보’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다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한겨레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니까 그 쪽에서는 ‘한겨레가 민노당 기사를 많이 안 실어주니까 진중권이 그게 불만인가 보다’ 그런 의미로 해석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정파적인 것과 상관없이 민노당의 법안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실어줘야 한다는 거에요.”

“민노당 위기, 의원단은 잘 하고 있지만 당내 소통 방식이 문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모두 보수화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노당이 우리 세대의 진보나 개혁을 원하는 목소리들을 결집시키고 권력화하는데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되는지,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원내 진출의 후유증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큰 것 같기도 하고요.”

기자의 지적에 그는 큰 틀에서 동의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특히 그는 “당이 몇몇 계파들의 연합체로 구성돼있고, 당권이 특정 조직에 의해 장악되면서 의사결정방식이 비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의원 10명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현재 의원들은 잘 하고 있다고 봐요. 초선 의원들인데도 다들 베스트 의원에 뽑혔잖아요. 재선이나 3선이 되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문제는 의원단이 아닌 당의 문제지요. 특정 정파가 잘못을 하면 퇴출 시킬 수 있는 구조인데, 그게 안 되죠. 계파들끼리 담합을 하니까요. 소위 말하는 NL계열은 당내 30%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조직선거로 최고위원단을 장악하고 있어요. 민주적 의사 결정이 왜곡되고 있는 거죠. 인터넷 활용도에 있어서도 민노당이 가장 활용도가 떨어집니다. 수구적 의사 소통 방식에 머물러 있는 거에요.”

그는 “민노당이 30년대식 마인드를 지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들로 장악돼서는 안 된다”며 특유의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 “조직된 노동자들은 점점 보수화되고 있고 그들은 사실상 비정규직의 파이를 빼앗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면이 있다”며 대공장 위주의 노동 운동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민노당과 노동단체에 대한 그의 독설은 기자가 그를 처음 인터뷰한 2년 전과 비교하면 사뭇 달라진 논조다. 그는 당시 민주노총 등 노조에 대한 사회의 비판 여론에 대해 “그나마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는 것은 조직된 노동자들”이라며 “재벌들이 노동자를 각개 격파하는 수단”이라는 논리를 폈었다.

물론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 할 것없이 노동자들이 시장에 의해 각개격파당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자본권력을 통제할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고대총학생회의 이건희회장 학위수여식사태와 관련, “고대사태는 산학협동이라는 명분으로 이제 대학마저 자본에 넘어간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며 “소위 명문대 재학생들이 점점 기득권화되고 있는 현상은 부유한 계층만 교육에 투자하고 명문대를 갈 수 있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본에 각개격파 당하는 현대 사회 비관적으로 본다”

개인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간섭과 통제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아나키스트’ 진중권은 현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변화의 물결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회는 비관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한 낙관론만을 펴고 있다”며 현실을 진단한다.

“개인들이 시장에 의해 각개격파당하고 있는게 현실이잖아요. 노 대통령도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황은 아주 비관적인데 ‘세상이 진보할 것’이라는 정치적 수사만 난무하니 답답한 노릇이죠.”

전방위 독설가에서 공중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한 그는 이제 주류 무대에서 또 다른 진중권식 도발을 꿈꾼다. 정치 ‘공학’의 틀이 아닌 정치 ‘윤리’의 관점에서 끊임없는 비판을 제기하고, 정체되고 길들여져있는 청취자들의 의식을 특유의 유머와 독설, 해학으로 버무린 상큼한 청량제로 도발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다.

“지금까지는 방송에 적응하느라 제 색깔을 드러낼 겨를이 없었거든요. 앞으로는 제 컬러를 더 많이 드러낼 겁니다. 그런데 방송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피디도 있고 작가도 있고. 제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들을 어떻게 저만의 색깔로, 진중권식 방송으로 효과적으로 풀어내느냐가 이제 남겨진 숙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