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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왜 이리 험한 곳에 자리잡아야 했을까?” 꼭 천자암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리도 험한 길을 거슬러 올라야만 이를 수 있는 절집, 암자를 찾아갈 때면 드는 생각입니다.

천자암(天子庵)은 승보종찰(僧寶宗刹) 순천 송광사에 딸린 암자이지만, 송광사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암자이지요. 송광사 산내 암자 가운데에는 가장 멀리 떨어진 암자인데, 송광사의 화엄전을 지나 가파른 산길 4Km 정도를 넘어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길이 험해, 편리한 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훨씬 먼 길로 에돌아 가야 합니다.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려면, 송광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송광면 이읍리로 가야 하지요. 이읍리 마을에서 산 중턱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곳입니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이읍리까지 간 뒤, 한참을 걸어 올라야 하는데, 산길이 매우 가팔라 한나절은 족히 잡아야 겨우 찾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어렵게 찾아갔던 초행(初行)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심조심 천자암으로 향했습니다. 이읍리 마을에서부터 천자암 입구까지 난 산길은 자동차로도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길은 그리 수월하지 않습니다. 운전 초심자라면 충분히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길입니다.

천자암에는 흥미로운 창건설화가 전합니다. 보조국사가 중국의 금나라에 가 왕비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금나라의 왕자와 함께 귀국합니다. 그가 바로 담당국사인데, 그 둘이 함께 이곳에 이르러, 암자를 지을 자리를 정한 뒤, 자신들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두었다는 것입니다. 꼼꼼히 따지고 보면 두 분의 스님이 활동하던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빙성은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오래도록 송광사, 천자암을 둘러싸고 전하는 소중한 전설입니다.

쉽지 않은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천자암을 다시 찾은 것은 바로 그 두 분의 스님께서 꽂아둔 지팡이의 안부 때문입니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88호가 되어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귀한 나무가 바로 그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입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자암에 이르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띄는 신비로운 나무이지요.

나무는 ‘곱향나무’입니다. 향나무 속 식물의 하나인 곱향나무는 원래 백두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있지요. 북한의 함경북도 명천군 사리(沙里) 지역에는 곱향나무가 군락을 이뤄 자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이 곱향나무 자생지를 북한 천연기념룰 제319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기도 하지요.

곱향나무는 잎이 바늘처럼 뾰족한 침엽수로, 잎의 길이가 다른 향나무에 비해 짧은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밖에 다른 생태적 특징은 향나무 속의 다른 나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한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곱향나무는 천자암 곱향나무가 유일합니다.

한참을 깊은 산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길은 끝나고, 길 끝나는 곳에 자동차 대여섯 대 정도 촘촘히 주차할 만한 공간이 나옵니다. 그 공간 한켠에 화물용 케이블카가 보입니다. 바로 천자암 스님들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품을 올리고 내리는 데에 이용하는 케이블카입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약 8백 미터 정도의 매우 가파른 길을 올라야 천자암에 이를 수 있습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릅니다. 어찌 이리도 외진 곳에 절집을 지을 궁리를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 암자를 지은 스님은 14세기 초 담당(湛堂) 국사라고 합니다.

이 두 그루의 나무는 서로 70cm 정도 떨어진 채, 8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자리에서 살아왔는데, 마치 굵은 한 그루의 나무인 양, 두 그루의 나무가 닮은 꼴로 서있습니다. 그래서 쌍향수(雙香樹)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을 겁니다. 스승과 제자인 두 스님의 전설 때문인지, 누구는 두 나무가 마치 예를 갖춘 제자가 스승에게 공손히 절하는 모습과 같다고도 합니다.

키는 12.5m, 가슴높이의 둘레는 왼쪽 것이 3.98m, 오른쪽 것은 3.24m의 크기입니다. 이 나무가 특별히 신비롭게 보이는 것은 엿가락 비꼬이듯 혹은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또아리를 풀어헤치며 하늘로 오르는 듯한 모습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줄기의 상당 부분이 썩어 없어져, 지금은 충전물로 메워준 상태입니다만, 남아있는 줄기만으로도 나무의 신비로운 생김새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줄기가 아름다워 한번씩 손을 대어 흔들어보면 극락세계에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지나치게 잦아지자, 이제는 나무 줄기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철책을 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과 함께 빚어내는 나무의 장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얼마간을 보내고 나면,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몸과 숨길을 금세 편안해집니다. 이리 깊은 산 속에 절집을 짓고, 그 안에 저리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가꿔온 이 절집의 스님들의 손길이 이내 고마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