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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전도사’ 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의 말이다. 8ㆍ31 부동산대책 발표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 비서관은 요즘 일부 언론의 보도가 못내 불편한 눈치다. 최상의 대책은 아니지만 최선의 차선책을 내놨건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이다.

논란의 핵심은 송파 거여지구 택지개발 문제. 정부는 강남 지역에 대한 실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송파 신도시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강도 높은 투기수요 억제대책이 마련된 만큼 판교와 같은 집값 폭등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세제 정상화 조치의 효과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계획을 발표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송파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마자 주변 집값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발표는 이미 송파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개발 사업과 맞물려 송파를 축으로 하남에서부터 성남, 용인에 이르는 거대한 강남권 ‘투기벨트’를 형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송파로도 부족하면 더 내놓겠다?

참여정부가 이번 8ㆍ31 대책 발표를 앞두고 당정이 마지막까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내용은 과감한 공급계획, 즉 강남 대체 신도시 문제였다.

판교발 집값 폭등 사태가 8ㆍ31 대책 발표의 도화선이 되었던 만큼 강남 대체 신도시 문제는 참여정부로서도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매주 열렸던 당정협의회 결과 여당 의원이 신도시 개발 논의가 있었다고 발표하면 정부가 허둥지둥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봉합에 나설 만큼 신도시 문제는 8ㆍ31 대책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이전의 조심스런 행보와는 달리 정작 발표된 8ㆍ31 대책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개발계획이 포함됐다. 이 정도 공급으로도 부족하다면 더 내놓겠다는 ‘화끈한’ 제안도 함께 내놨다.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동쳤다. 이틀 전 발표된 3차 뉴타운 후보지 선정도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서둘러 해당 지역을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지역에 대한 투기꾼을 평생 관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지난 4월부터 도입된 신도시 계획기준에 따라 송파에도 납골당 등 혐오시설이 들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송파 축으로 ‘거대 투기벨트’ 형성

허둥대는 정부와 달리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어차피 내년부터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기로 해놓고 주택거래신고지역 지정해 투기를 막겠다는 건 무슨 말이며, 송파지역 투기꾼만 어떻게 평생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드림팀을 구성해 합숙까지 해서 내놨다는 대책이 오히려 투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은 그야 말로 코미디”라며 “정부는 시민단체가 왜 총론에 찬성하면서 각론에는 반대하느냐고 불평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내놓은 대책에 왜 투기세력들이 그렇게 환호하는지 먼저 반성해 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어설픈 공급확대책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소지가 크다고 지적해왔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일제히 송파신도시 개발이 8ㆍ31 대책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경실련은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송파주변과 경기남부지역의 개발 계획을 종합 분석한 결과 송파구 일대가 새로운 투기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투기적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발표된 송파 신도시 개발계획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송파신도시 개발은 그 자체로도 투기 우려가 있지만 이미 송파 일대와 경기 남부권에서 진행 중인 각종 개발서업과 맞물려 거대한 ‘투기벨트’를 형성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폭등 진원지 강남 일대에 일산급 대규모 개발

현재 송파신도시 주변에서 추진 중인 개발 사업은 거여 지구 신도시를 포함해 모두 488만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집값 폭등의 진원지인 강남 일대에 일산신도시 규모를 넘어서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송파 잠실, 문정, 장지, 복정, 마천, 거여 지역을 넘어 경기도 하남, 성남까지 각종 개발 사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형세다.

경기도 남부지역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99년 이후 경기 남부 지역에서 완료됐거나 추진 중인 개발사업 규모는 노태우 정권 당시 추진된 1기 신도시 개발 규모를 훌쩍 뛰어 넘는 1787만평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하남을 시작으로 송파-성남-용인-화성-오산까지 염주 알처럼 이어진 거대한 개발축이 형성된 것이다.

정부는 송파가 판교의 재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대 카드가 8ㆍ31 대책에 이미 담겼고, 그 대책의 핵심인 세제 정상화 방안조차 한나라당의 반대로 약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송파 신도시와 거여-마천 뉴타운이 동시에 추진됨에 따라 부동산 가격 상승뿐만 아니라 그린벨트 훼손, 도시연담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렇게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국토계획이 졸속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헌동 단장은 “참여정부는 송파 신도시가 투기수요가 아니라 실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참여정부가 정말 실수요자를 위한다면 송파에 투기판을 벌인 다음 서민들에게 돈 몇 푼 빌려줄 생각 말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민간분양 고분양가나 잡으라”고 힐책했다.

현재 다음에서 진행 중인 부동산정책 전문가청원을 맡고 있는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송파거여 신도시 경우 8ㆍ31 대책이 법제화되어 투기적 수요가 걷히고 실수요 기반이 구축된 이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역시 “공급 확대책으로 인해 오히려 투기가 촉발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각 철회하고 보다 강력한 투기억제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부터 이런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국민들에게 이런 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