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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미국 상원은 기업의 인수합병과 관련한 법안을 하나 통과시켰다. 외국 정부가 운영하거나 소유한 기업이 미국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절차를 까다롭게 제한한 법이다. 법안에는 구체적인 배경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워싱턴 정가나 월스트리트의 금융계에서는 이 법안의 의미를 명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중국 정부가 지분의 70%를 갖고 있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8대 에너지기업인 유노컬을 합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법안의 실질적인 취지였다. 이러한 미국 의회의 정치적 압력에 밀려 이 인수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중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대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를 통해 지난 8월 22일 카자흐스탄의 페트로카자흐스탄사(社)를 41억8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는 CNOOC의 미국 유노컬사 인수 좌절 이후 3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중국 기업에 의한 해외기업 인수 중 사상 최대 규모다.

중국은 대규모 무역흑자로 ‘외환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전세계를 무대로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01년 중국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는 미국 데본 에너지가 소유한 인도네시아 자산을 인수했다. 작년 12월에는 중국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인 롄샹(聯想·레노보)이 미국 컴퓨터업계의 대표선수인 IBM PC 부문을 사들였다.

올 들어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미국 3위의 가전업체 메이택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메이택은 후버 진공청소기, 아마나 전자레인지, 딕시나코 자판기 등으로 미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생활가전업체다. 또 CNOOC은 유노컬 인수를 놓고 미국 셰브론텍사코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중국의 인수합병 전쟁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의 난징 자동차와 상하이 자동차는 최근 법정관리 중인 영국 로버자동차 인수를 놓고 서로 격돌했고 난징 자동차가 승리했다. CNOOC도 지난 4월 자회사를 통해 캐나다 캘거리의 에너지기업인 MEG에너지의 지분 16.69% 인수, 캐나다 앨버타주의 오일샌드 3만2900에이커(가용석유 20억배럴 매장)에서 석유채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테크놀러지는 영국 통신업체인 마르코니 인수를 고려하고 있고,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는 이탈리아와 독일에 있는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 매입을 검토 중이다. 또 씨틱 리소시스 홀딩스는 태국 석유회사의 지분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차이나 알루미늄은 해외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0억달러의 신용 한도를 설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중국은 낮은 기술 수준과 안좋은 이미지 때문에 국제 경제계에서 큰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국력이 신장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특히 정부가 직접 나서서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해외기업 인수를 독려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은 지난 5년간 해외기업의 인수·합병이나 현지법인 신설에 80억달러를 투입했고 세계 각국에 2300여개의 중국계 법인을 신설했다. 지난 한 해에만 무려 829개의 해외법인이 만들어졌다.

현재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글로벌 500’에 드는 초다국적 기업을 50개, 중형 다국적 기업을 500개, 소형 다국적기업을 5000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계획 덕택에 중국기업은 서구 기업보다 싼 금리에 대규모 인수자금을 정부에서 조달, 해외 인수전에서 유리한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의 중국 소식통들은 “런민은행은 해외기업 인수에 나서는 중국기업에 대출제한까지 풀어주면서 인수를 독려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면 향후 10년쯤 뒤에는 세계 기업계의 판도가 크게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서 ‘경제안보’ 논란 불거져

적극적인 기업 인수는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세계적인 저금리 때문에 M&A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벤처붐 덕택에 세계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릴 당시에 정점에 달했던 M&A는 이후 주식시장 버블 붕괴와 더불어 침체양상을 보였었다. 하지만 올 들어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중국이 고성장 추세를 이어가면서 M&A 시장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세계 M&A 시장에서 제시된 인수제안 금액은 6659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53%나 증가했다. 지난 2분기 미국 내 M&A 규모도 작년보다 73%나 증가했고, 1분기보다도 20%나 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중국만이 활발한 M&A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중국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이유는 초강대국인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 때문이다.

중국의 공격적인 서구기업 인수는 서구 국가, 특히 미국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접전은 미국이 핵심산업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에너지 산업, 즉 CNOOC의 유노컬 인수전을 둘러싸고 전개된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CNOOC이 유노컬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미국 2위 석유업체인 셰브론이 유노컬을 인수하기로 계약하고 유노컬 이사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CNOOC이 뛰어들어 훼방을 놓은 셈이었다. 물론 후발주자인 만큼 인수조건은 경쟁자인 셰브론(미국 2위)보다 좋았다. 셰브론은 주식인수와 현금지급 방식으로 166억5000만달러(이후 171억달러로 상향 조정)를 제시했다. 반면 CNOOC은 훨씬 높은 185억달러를 내놓았고 셰브론에는 없던 고용승계도 약속했다.

CNOOC의 발표 이후 미국에서 ‘경제안보’ 논란이 벌어졌다. 의회에서는 석유가 국가의 기본 에너지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형 석유회사가 잠재 경쟁자인 중국에 넘어가는 사태를 심각하게 판단했다. 윌리엄 제퍼슨, 앨 그린, 보비 진달, 케빈 브래디 등 하원의원은 존 스노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CNOOC 인수안의 국가안보적 위험을 정밀조사하도록 요구했다. 제임스 울시 전 CIA(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은 지난 7월 13일 열린 의회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CNOOC이 유노컬을 인수하려는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가 걸린 것”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정치인들은 “CNOOC이 유노컬을 인수할 경우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미국에 들어올 석유를 중국으로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증권사, 신용평가기관, 언론사들은 일제히 CNOOC의 인수재력 및 경영능력을 의심하며 중국 자본의 미 대륙 진출을 경계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중국업체 롄샹이 IBM의 PC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미국 3위의 가전업체인 메이택과 미국 8위의 석유회사 유노컬마저 중국기업에 넘어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중국기업이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론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의회의 압력이 높아지자 마침내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유노컬이 CNOOC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적 경제적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할 적절한 절차가 뒤따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적절한 절차는 미국 재무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외국인 투자위원회를 의미한다. 외국인 투자위원회는 외국기업이 미국기업을 인수하는 거래가 국가적 경제적 안보를 위협하는지 여부를 검토, 승인 혹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CNOOC과 셰브론의 싸움은 점점 격화됐다. 유노컬은 7월 19일 이사회를 열고 더 높은 가격을 써낸 CNOOC의 인수안을 거부하고, 셰브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셰브론은 인수가격을 당초보다 5억달러 정도 더 올렸다. 유노컬 측이 매각작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공방을 피하기 위해 CNOOC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요구했으나 CNOOC이 거절, 셰브론으로 결정됐다. CNOOC은 결국 미국의 정치적인 압력을 넘지 못하고 8월 2일 유노컬 인수전 참여를 포기했다.

“중국기업, 미국에 위협될 수 있다”

미국 정부 차원의 대응과 별도로 미국기업과 중국기업 간의 공방도 벌어졌다. 중국기업의 인수 시도에 맞서 미국기업이 반격하는 양상이다.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인 월풀은 지난 7월 18일 “메이택을 13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겠다”며 인수전 참여를 발표했다. 하이얼이 “12억8000만달러에 메이택을 인수하겠다”고 제안, 실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나온 역공이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월풀의 입찰 참여 발표 다음날 하이얼은 입찰 포기를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CNOOC이 유노컬 인수건으로 셰브론과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중(反中)감정을 더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하이얼 경영진과 중국 정부의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중국의 대외진출이 외국의 반발에 부닥치고 있지만 중국은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해외 M&A 경험이 풍부한 외국 사모펀드와 손을 잡는 방식이다. 예컨대 유노컬 인수를 주도했던 CNOOC의 푸청위 사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의 거래 관행과 미국식 사고에 매우 익숙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CNOOC은 미국 진출이 좌절됐지만 팽창주의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홍콩 문회보는 최근 CNOOC이 호주 최대 석유가스 회사인 우드사이드 페트롤리엄(WP)이나 제3위 업체인 산토스 인수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단행된 위안화 평가절상이 중국의 M&A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감소, 해외기업 인수의 자금줄이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중국 내 생산품 수출이 더 어려워진 중국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현지기업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마샬 메이어 교수는 “세계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데 이어 중국도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체스 게임’을 하고 있다”며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