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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도달점이지 출발점은 아니다. 그리고 사물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진실할 때 뿐이며 진실 이외는 미는 없다. 또한 진실이란 ‘완전한 조화’를 말한다. 이 말은 로댕의 말인데, W.셰익스피어는 “미는 요녀이다.

그 마력 앞에서는 신앙도 녹아서 피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 ‘미인(美人)‘ 하면 하얀 피부, 파란 눈, 금빛 머리를 갖춘 삼위일체가 기본조건이었다.

그래서 유한계급의 부인들은 이 조건에 보다 자신을 접근시키고자 거금이자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과학이 하늘을 날다보니 사람이 달에도 가고, 의학의 발달은 사람을 살릴만큼 다가서다 보니 얼굴형을 바꾸고 피부색까지도 바꾸어 미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데 14세기에 프랑스 왕비가 된 이사보는 얼굴이 덜 하얗던것 같다. 이 흠을 씻고자 클레오파트라가 그러했다듯이 당나귀의 젖으로 목욕을 했고 멧돼지의 머리골과 악어의 내장, 늑대의 피로 만든 로션을 칠했다.

이 표백 화장수는 그 후 상류사회에 크게 유행하고 있다. 얼굴을 희게 한다는 연백(鉛白)은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까지 써내려온 표백분인데 이 연독(鉛毒)으로 죽은 귀족부인이 허다하다. 27세에 죽은 코벤트리 백작 부인을 비롯 엘리자베드 1세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친다. 구한말 웰벨 러시아공사 부인이 연백분을 미끼로 명성황후(민비(閔妃))에 접근, 민비의 얼굴을 푸르뎅뎅하게 연독으로 부어오르게 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급작스레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이 하얀 피부에의 선망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보편화되고 말았다. 한데 80년대 날아든 외국잡지의 광고난에 보면 이 유구한 전통에 역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가 있다.

화장품 광고가 “소맥색(小麥色)으로의 유혹”이니, “피부는 담갈색(淡褐色)에 굶주리고 있다”느니 하여 탈백(脫白)의 피부풍조에 부응하고 있고, 또 J.M.그리핀이란 이가 솔라렌이라는 새 약품으로 스스로 하얀 피부색을 건강한 담갈색으로 바꾼 체험담을 쓴 <나 같은 검은밤>이라는 책이며 백악관의 간부인 그레이스 하르셀이 역시 탈백의 체험을 쓴 <사울 시스터>란 책이 잘 팔리고 있었다.

<에보니>란 잡지에선 흑인의 검은 피부를 암갈색으로 바꾸는 표백크림과 백인의 하얀 피부를 소맥색으로 바꾸는 갈색크림을 나란히 선전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현대인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피부빛깔은 동양사람의 빛깔인 갈색지향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것 같다. 눈 빛깔도 그렇다.

클레오파트라가 녹색의 공작석(孔雀石)분말로 아이쉐도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그 오랜 벽안지향(碧眼志向)의 역사도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것 같다. 베라돈나(미녀)라 하여 동공(瞳孔)을 크게 하고 눈을 번쩍이게 하는 생약(生藥)의 눈 화장품이 17세기에 유행했었다 한다.

한데 눈 빛깔을 검게 한다 하여 쓰지 않던 이 화장품이 부활하고 있고, 또 파란 눈동자를 캄플라지 시키는 갈색 콘택트렌즈까지 시판되고 있다 한다. 하느님이 사람을 구워 만들 때 너무 바싹 구워 태워버린 것이 흑인이요, 너무 설 구워 덜 익힌 것이 백인이며, 이 두 실패를 체험으로 가장 알맞게 구워낸 것이 황색인종이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이야기 아닌 진실로 입증되기 시작하는 조짐이다.

한국 여인들이여, 우월감을 가져도 되겠는데 무엇이 더 부족해 피부관리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가. 전국 어디를 가나 피부관리를 하는 곳이 많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피부관리 전문의원은 연회비가 1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알려졌는데, 이 피부관리 전문의원을 낙선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다녔다고 한다. 당선자 박원순 후보측의 융단폭격을 통해 알려진 일이다. 때문에 낙선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현 부대변인은 선거를 1주일 앞두고 “나 후보가 알고 지내던 의원 원장과의 인연 덕에 1억 원의 회비를 다 내지 않고 건별로 계산했다”고 했다. 안 대변인은 “나 후보가 다운증후군인 딸의 피부노화를 치료하기 위해 같이 방문해 치료받은 적은 있다”며 “나 후보가 업무과다로 극심한 심신피로가 있을 때 치료를 요청한 바 있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진료를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미인이 되려고 함은 여자의 욕망일 것이다. 그런데 아닌 것을 가슴에 못을 박는 비방이었다면 큰 잘못이다.

고운석<시인. 광주시 남구발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