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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4일
감동의 나라 중국 302회
중국에는 용이 살고 있다.
서예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생가
입력시간 : 2014. 05.13. 00:00확대축소


곡부에서 청도로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가면 임기(臨沂)시가 나오는데 아름답고 깨끗하다. 임기란 ‘기수(沂水)에 임해서’란 뜻이다. 기수 강가에 새로운 누각이 들어서 임기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의 출신으로는 삼국시대 제갈공명(諸葛孔明), 동진시대 왕도(王導), 왕희지가 있다. 왕희지(王羲之)는 낭야왕씨(琅邪王氏)로 불리는 가문으로 최대의 세력을 이루었다. 대대로 도교(道敎)를 믿었고, 서예(書藝)가 가문의 전통이었으며, 아버지나 아들이나 같은ꡐ지(之)ꡑ자 돌림을 쓴 가문이다.

진나라가 망할 때 낭야(琅邪: 임기)로 옮겨와 정착하였는데, 그들 일가가 호족으로 이름이 높아진 것은, 동진(東晋)의 건국 때 왕도(王導: 276~339)라는 사람이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명재상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왕희지의 아버지인 왕광(王曠)의 종형으로, 당시 혼란했던 황하 지방과는 달리 양자강 이남지방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여 왕씨(王氏)집안의 기초를 닦았다.

당시 귀족들 가운데, 왕씨(王氏), 사씨(謝氏) 등은 서로 일족간의 혼인관계를 통해 폐쇄된 귀족사회를 유지하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문예(文藝)에 뛰어났으며, 그 위에 서예(書藝)에 능했다.

이런 환경 하에서 태어나고 자란 왕희지는 축복 받은 환경과 뛰어난 재능이 어우러져 서예의 최고봉인 ꡐ서성(書聖)ꡑ으로 추앙되는 업적을 이룬다.



한편 왕희지에게는 아들이 모두 7명이 있었는데, 그중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은 모두 5명이다. 현지(玄之), 응지(凝之), 휘지(徽之), 조지(操之), 헌지(獻之)가 그들인데, 이중 휘지(徽之)와 헌지(獻之)가 빼어났던 인물로 전해진다.

그 중에서 서예로 아버지인 왕희지에 못지않은 이름을 날린 사람이 바로 마지막 7남인 왕헌지(王獻之)인데, 보통 아버지인 왕희지와 더불어 ꡐ이왕(二王)ꡑ을 겸칭된다. 원래 뛰어난 서예가는 수십년 각고의 세월 끝에 탄생되기 때문에,ꡒ청년 문장은 있으나, 청년 명필은 없다ꡓ란 말들을 했다.

헌지(獻之)의 자(字)는 자경(子敬)으로, 어려서부터 이름을 얻었으며, 성격이 고매하고 거침이 없어, 하루 종일 아무 일 않고 있어도 행동거지가 흐트러짐이 없었으니, 당시 풍류로는 최고라고 일컬음을 받았다.

양희지 생가(生家)는 1989년에 복원하기 시작하여 2002년에 완성하였다. 글씨를 쓸 때 붓을 씻었다는 세연지(洗硯池),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나타내는 유상정(流觴亭), 비석을 모아둔 비림(碑林), 소흥에 있는 난정(蘭亭)의 모형도 그대로 만들었다.

당(唐) 태종은 왕희지 글씨에 빠졌다. 왕희지의 글씨를 거의 다 모았지만 '난정서'만은 보질 못했다. 당 태종은 왕희지 집안에 내려온 '난정서'를 온갖 계략을 다해 손에 넣었다. 죽을 때가 되자 아들에게 “꼭 '난정서'를 나와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

중국 진서(晋書) 왕희지전(傳)은 왕희지 글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떨어지는 이슬을 구름이 이어주듯 끊어질까 싶으면 이어지고, 봉황의 날개 짓에 용이 휘감기는 모습 같구나.’ 그러나 지금 지구상엔 왕희지가 직접 쓴 글씨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당 태종이 죽으면서 갖고 있던 왕희지 글씨 2300점도 모두 땅속에 함께 묻었다고 전해 온다. 후학들은 누군가 왕희지 진본(眞本)을 보고 베껴 쓴 모본(模本)을 왕희지 글씨로 알고 배우고 또 베껴 쓰며 서예의 전통을 이어 왔다.

일본에서 왕희지 글씨 모본 서첩(書帖)이 새로 발견됐다. 당나라 때 중국에 갔던 일본 사신이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가로 10.1㎝, 세로 25.7㎝ 종이에 '大報期轉呈也(대보기전정야)'를 비롯한 스물네 글자가 쓰여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처럼 시기가 이르고 상태가 좋은 왕희지 모본은 세계에 열 점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세기의 발견'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경북 군위 인각사에 있던 일연선사비(碑)가 왕희지 글씨들을 모아 세운 것이다. 왕희지 글씨를 4000자나 집자(集字)한 예는 중국에도 없다. 조선에 왔던 중국 사신들은 이 비문을 탁본 떠 가져가는 것이 최고의 귀국 선물이었다고 한다.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著者 姜元求 박사의 프로필 現 행정학박사/ 現호남관광교류협회장/現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現광주여행문화원 회장/現 중국 심양. 남창 명예시민/ 前 전국시도관광협회연합회장/前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前 광주권발전연구소장/ 前광주상아탑학원 원장 前호남대학교

초빙교수 책 구입 및 연락처 :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062)652-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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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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