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처하는 한국외교에 적색 경고들이 켜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년초기까지만 해도 비교적 순항한 것처럼 보이던 한국외교에 이처럼 비판적 지적이 많아진 것은 아무래도 한반도의 사드(THAAD) 배치문제와 함께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가입과 관련한 우리 외교의 영활(靈活) 하지 못한 대처와 관련되고 있다.

외교의 목표가 소리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국익을 확보하는데 있다면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영활해야 할 것이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해관련 국가들과의 샅바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뚝심도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속마음을 숨기는 포커페이스의 재능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외교담당자들에게서 이러한 덕목들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외교 강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동아시의 전략적 요충지에 분단국가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이 미․중 양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외교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국가의 이익을 첫째로 생각하면서 앞에서 지적한 덕목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해라면, 중국은 떠오르는 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중 양국 간의 세력이 완전히 도치되는 데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겠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이른바 ‘다자간 협력’을 내세우며 우방국가들 간의 공동대처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지역의 안보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미․일 안보 협력지침’에 의거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최근 미국의 태도는 한․일간의 갈등상황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국은 누구편인가?”라는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뭐라 해도 한․일 양국 중 한 곳을 택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미국은 일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미 오래전에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이익은 ‘근본적 이익’이며, 한국에 대해 갖는 이익은 ‘두번째 이익’이라는 랠프 N. 클러프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미국에 의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은 그들의 꿈(夢)을 실현하기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구상하고, AIIB 창립을 주도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에 들어와 중국은 ‘국가최고지도자’가 전통적 우방인 북한을 제치고 한국을 먼저 방문할 만큼 한․중 양국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한 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 호의를 표시한 것이며,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 관계에서도 오는 것에는 가는 것이 있어야 하며, 기대에는 응답이 있어야 한다.

THAAD와 AIIB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연관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연초 중국이 AIIB 창설을 제안하면서 한국의 적극적 지지를 요청 했을 때, 한국이 좀 더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면, 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의구심을 해소하는데 훨씬 용이했을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중간에 AIIB로 굳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THAAD 배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이 훨씬 쉬었을 것이고, THAAD가 중국에 위협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것을 잘 설명했다면 한․중간의 협력관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까지는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외교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신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외교담당자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미국이 일본과 밀착되어 가는 상황에서 한․미 협력의 지속을 위해서도 우리는 미국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조건 몇 가지는 지니고 있어야 하며 거기에서 가장 유용한 ‘패’는 중국과 북한카드라고 할 수 있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 외교는 좀 더 영활해져야 한다. 일본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을 붙들어 매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디와 협력해야 할까? 이제는 북한 카드를 커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5․24조치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완화되고, 한반도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반면 한국의 외교적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대통령과 외교장관은 눈빛으로 통해야 한다. 대통령은 원칙을 강조하더라도 외교장관은 물밑에서 대화를 지속하고 상대국 내에 대화통로를 유지해야 한다.

끝으로 대중(對中) 외교에서 실리를 추구하려거든 그들에게 명분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일찍이 맹자(孟子)가 양혜왕에게 정치에서 이(利)를 추구하지 말고 의(義)를 취하라고 강조했던 나라가 중국 아닌가.

오수열<조선대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http://osy.pe.kr/22035328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