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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수치가 아니라,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것이 수치다. 하지만 수치로 생각하지 않아도 지갑이 텅 비어 있으면 미음이 병든다.

한데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직장인으로 살기는 참 고달프다.

20대에 직장을 구해도 30대 결혼과 내 집 마련, 40·50대 자녀 교육, 60대 자녀 결혼과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지려면 ‘돈 버는 기계’처럼 살게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기준으로 ‘수조 계급론’이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동일 선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라도 흙수저와 금수저는 차이가 난다. 이유는 빚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 때 낸 이들은 10~20년간 대출을 갚으면서 자산 증식 기회를 놓친다. 이 때문에 소득이 줄어들거나 끊기는 60대에 돌아오는 성적표는 초라하다.

최근 언론에서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가계신용리포트를 작성한 결과 드러난 실상이다. 이는 옛적에도 마찬가지였던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요즘으로 치면 ‘흙수저’였다.

명문가의 자제로 엘리트 교육을 받기는 커녕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자라 서른 둘에 겨우 무과에 급제했다.

무관이 된 뒤에도 오랜 세월 변방의 한직을 전전하며 좀처럼 뜻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품탓에 왜란 전에도 좌천과 파직, 백의 종군을 거치며 굴곡 많은 삶을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해군 제독(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이 됐을 때 그의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돈도 배경도 없는 늦깍이 이순신이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터다.

참전한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으며, 사실상 꿰멸상태에 놓인 조선 수군을 추슬러 출전한 명랑해전에서는 13척의 배를 이끌고 적 선단을 패퇴시켰다. 당시 해적의 주류였던 백병전에서 벗어나 조선 수군에 유리한 포격으로 전투의 양식을 바꿔 놓았으며, 육전에서 사용되던 진법을 도입해 적의 허를 찌를 만큼 지락도 뛰어났다.

불세출의 성웅이었지만 그의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난중일기에는 압도적인 적의 위세 앞에 열세에 처한 장수의 인간적인 고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죽고자해야 비로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비장함 속에는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위기의식과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흙수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넘쳐 나는 요즘이다. 그럴만한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전쟁같은 입시 끝에 겨우 들어간 대학 졸업 후 기다리는 것은 취업의 좁은 문이고 이를 통과한다해도 결혼과 출산, 양육의 벽이 버티고 있다. 실력 있는 인재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낙담하고 좌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좋은 배경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금수저’를 부러워할 만하다.

이들에게 무작정 눈을 낮추고 더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해주고 싶다.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스스로를 자조하고 패배의식에 젖어 주저앉는다고 되는 일은 없다.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불꽃 같은 그의 삶이 이를 말해준다.

한데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사는 40대들은 매달 빚 갚는 데 월급 3분의 1 가까이 쓴다고 한다. 40대들은 매달 빚 갚는데 월급 3분의 1 가까이를 쓴다고 한다. 40대는 30대 때 받은 주택 관련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급한 자금이 필요할 때는 신규 대출을 통해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노년층은 일반적으로 생활비가 줄어드는데 매달 갚은 대출금이 많아진다는 것은 대부분 중신자들의 노후 대비가 전혀 안돼 있다는 의미”라며 “소득이 크게 줄어들어 생활비 부족으로 빚을 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가난 때문이다.

허나 ‘흙수저’ 속에서도 불꽃같은 삶을 산 이순신을 본 받아야 할 것 같다.

/고 운 석< 시인>